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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20. 13:21

최근 이명박이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1월에 임기가 끝나는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의 인사는 현 대통령이 행사하지 말고 차기 정부에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게 현재 가장 당선이 유력하다는 대선 후보의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이다. 각 언론에서는 "도를 넘었다." 내지 "마치 대통령에 당선된 듯한 행동이다."라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런 비판도 맞기는 하지만, 그런 어이없는 발언을 하는 경솔함과 품위없음을 비판하는 것은 작은 문제이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더 큰 문제는 이명박의 정치적인 입장과 가치관 등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게 가장 큰 문제이다. 도덕성이나 품격, 자질, 땅을 얼마나 가지고 있고, 위장전입을 얼마나 했는지 등을 검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일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철학과 식견이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이런 검증이 가능한 발언이 최근 두 가지가 나왔다. 하나는 위에서 든 인사에 대한 발언이고 또 하나는 이른바 '마사지사' 발언이다. 이런 발언들은 절대로 실수로 나오는 게 아니다. 이명박은 유독 이런 종류의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인데, 각종 보수언론에서 집중포화를 받는 노무현의 '천박함'과는 질이 다른 '천박함'이다. 노무현의 천박함은 주로 그의 단어선택, 어법 등에 대한 것이라면 이명박의 천박함은 주로 그 발언의 근저에 깔린 가치관의 천박함에 대한 것이다. 노무현은 공적인 발언 중에 자주 비속어를 섞어 써서 대통령의 품위에 맞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사투리이거나, 비속어로 잘못 알고 있는 표준어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해도, 격식에 맞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맞는데, 이런 문제에 대하여 '천박하다'는 비난을 하여야 하는가는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그게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의문을 가져올 문제인가에 대해서 나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노무현은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을 갖지 못한 유일한 대통령인데, 그 시절 언론들의 비판의 대부분은 대통령 품위에 대한 비난이었다. 언론의 힘은 대단하게도, 많은 국민들은 노무현이 대통령 깜냥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 일련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맞물려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게 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이 틈만 나면 '언론 탓'을 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그의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이 엉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에 대해서는, 언론들의 이런 외형에 집중된 비판은 옳지 못하다. 이명박은 그 외형의 천박함만이 문제가 아니라 내적인 가치관의 천박함이 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서 글을 쓴 적도 있지만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성이나 말을 얼마나 품위있게 하느냐가 아니라(그렇다고 이런 요소가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 후보의 정치 철학과 가치관이다. 정책을 검증하고 토론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대통령이 돼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따져보면 그의 정치 철학과 가치관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대선 후보의 토론회는 '예산이 얼만지 아느냐'나 '실업자가 몇 명인지 아느냐' 등 숫자를 누가 얼마나 잘 외우고 있는가 등의 지엽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만이 논란이 된다. 예를 들면,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통해서 이명박의 환경에 대한 가치관과 경제 성장에 대한 가치관, 나라의 지향점에 대한 가치관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런 '후진' 철학과 가치관이 21세기의 대선 최강 유력 후보의 공약에서 나온다는 것이 한국의 슬픔이다. 


이명박은 임기가 없는 공무원과 임기가 있는 공무원을 구분하여 놓은 민주주의 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명박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어서 이런 발언이 나왔다고 본다. 그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 나온 발언만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임기가 따로 없는 국무총리, 장관 등은 당연히 법적으로도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고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대통령과 진퇴를 같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이나 법률로 임기가 보장된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감사원장, 검찰총장 등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대통령과 진퇴를 같이하는 공무원은 아니다. 그건 직무상 독립성이 강하게 요구되기 때문이다. 물론 예를 든 앞의 세 직위와 검찰총장은 성격이 좀 다르다. 검찰총장은 헌법에서 임기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고 대통령의 지휘, 감독을 받는 행정부의 공무원이다. 그렇지만 직무상 어느 정도 독립성이 요구되고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역사적인 교훈으로 검찰청법에 의하여 2년의 임기를 보장하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는, 권력의 내부에서는 그 인원수로 견제하게 하고(예를 들면, 헌재재판관이 9인인 것) 외부적으로는 차등 임기를 두어 견제하게 한다. 그래서 이런 임기가 보장된 공무원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대표하는 세력의 문제인 것이 된다. 따라서 임기가 하루가 남은 대통령이라도 당연히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코드가 맞는) 공무원을 임명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물론 국회의 청문회 등의 절차상 임기가 하루 남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는 문제는 안 생기겠지만. 


노무현은 임기 중에 대법관, 헌재재판관 등의 다수를 임명할 수 있는 이전(민주화 이후)에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권력을 가진 행운의 대통령이었다. 그간의 위 구성원들은 극우적인 색채를 띤 보수 인사가 전부였으므로 조금이라도 왼쪽의 철학을 가진 구성원으로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실패했다.(노무현은 서민들의 저항에는 강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는 약하다.) 당연히 이런 실패도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대통령의 임명에 반대하는 극우세력의 힘이 좀 더 셌던 이유로 그리된 것이다. 극복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이다. 선거를 통해서 이런 인사를 관철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이렇게 세력이 약하여 원하는 인물을 임명하지 못하는 것도 민주주의이지만 임기가 얼마 안 남은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도 당연한 민주주의이다. 하여간, 좀 딴소리가 많았지만, 이런 이유가 있는 임기제 공무원을 '한낱'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게 (용감하게도) 공개적으로 요구를 했다니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뭐 반대세력으로서 이런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할 수는 있다고 해도, 이걸 통해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대세력의 주장을 이겨내는 것도 노무현의 정치력일 것이다.) 이 발언으로 볼 때, 이명박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지도자는 아니라는 것을 국민이 알아채야 한다. 그리고 그걸 도와주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이른바 '마사지사' 발언은, 이것 참, 그야말로 견적이 안 나오는 발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각 블로그에서 집중포화를 맞고 있으니 나까지 한마디 거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보수언론에서 이에 대해 입을 꽉 닫고 있다는 점에서 평범한 '백성'들이 과연 제대로 '임금' 후보를 검증하고 선거에 임할 수 있을까 걱정이 크다. 언론이 제 사명을 거부하고 태업怠業을 하고 있으면서, '48년 만의 회동'이나 하고 자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대선 정국은 너무 조용하다. 한국 (민주화 이후의) 대선은 언제나 격렬한 사회적인 논란 속에서 일정한 페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번 대선은, 어찌보면, 한국 사회의 지향에 대한 토론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져야 하는 시점에 찾아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조용하다. 시끄러워야 할 의제에 대해서는 조용하고 엉뚱한 정윤재, 신정아 사건으로 시끄럽다. 이 중요한 시기에 엉뚱한 문제에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이다. 물론 신정아 사건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인 학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를 준 사건이다. 하지만 논의는 촛점을 벗어난지 오래이며 이제는 그저 선정적인 스캔들로 떠들썩하다. 기회는 이미 사라진 것이다. 정윤재 사건, 이건 권력에는 언제나 존재하는 부패한 측근의 문제이다. 권력 측근의 부패에 대해 관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온 신문이 하나같이, 세상이 무너진 듯이, 여러 면을 투자하여 파헤칠 "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 토론해야 할 중요 의제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점점 더 가난해질 국민들을 위한 양극화 해소 방안이나 온 국민의 1/4에 가까운 비정규직 문제, 교육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등이지 민주화 세력의 '꼴 같잖은' 도덕적 우위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물론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세력은 정권을 "되찾기" 위해 노무현 정부의 약점을 최대한 물고 늘어져야 하겠지만, 한국은 이들만 사는 게 아니다. 지금은 정확히 지지율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국민의 반이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은 그렇게 놀고들 있으라고 하고 나머지 국민의 반은 처절하고, 그리고 격렬하게 우리 앞에 놓인 엄중한 의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해야 한다. 


사실 이명박을 보고 있으면, 과연 당선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누가 봐도 너무 약점이 많다. 이른바 범여권에 확실한(지지율이 높다는 의미가 아니라) 후보가 있어도 이명박의 지지율이 이렇게 높을 수 있었을까? 누구 말마따나,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확률은 박근혜보다 낮은 게 아닌지... 엉뚱하게 시끄러운 신문을 보면서 좀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