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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12. 01:10
김승연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정몽구와 엮어서, 세간이 시끄럽다. 유독 재벌에겐 약하고 노동자에겐 엄한 한국 사법부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힘있는 자들에겐 솜방망이로 보이는, 권위로 먹고살아야 하는, 사법부에 대한 비판은 나까지 숟가락을 얹을 필요도 없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힘있는 자들에게 약한 사법부에 대한 얘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나는 좀 다른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이 문제는 모든 재벌과 관계된 사건(정몽구, 박용성 등등)과는 좀 다른 김승연에 국한된 문제로 봐도 좋다.

이전에도 ['구속'이라는 '처벌']을 통해 잠시 지적한 바 있지만, 한국에서는 법 전문가이거나 문외한이거나 모두 구속은 처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판사들도 마찬가지라, 다른 선진 사법제도를 가진 나라들에 비해 한국의 처벌은 솜방망이처럼 보인다. 재판하는 동안 거의 모든 피고인들이 구속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판결을 할 때, 이미 처벌받았다고 생각되는, 구속기간을 감안하여 가벼운 형을 선고하게 되는 것이다. 법으로 구속기간은 본형에 산입하게 되어있지만 그건 별문제이다. 실제로 실형을 선고할 사건이라고 판단되어도 구속을 실형을 받은 것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실형을 선고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집행유예는 어느정도 예상이 됐던 일이다. 오히려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 관행과는 다르게, 실형을 선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건 김승연이 재벌이어서가 아니라 법원 판결의 경향이다. 이번 사건에서만 유독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건에서도 그랬을 것이 분명하다. 법원이 집행유예를 남발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혼재되어 있을 테지만, 그 중에 구속을 처벌로 보는 인식도 한 몫을 단단히 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김승연 사건에서도 힘있는 자들에게 약한 사법부의 체질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 내면에는 구속을 처벌로 간주하는 이러한 인식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법원이 누대에 걸쳐 만들어진, 사법의 기본원리이고 당연히 헌법의 기본원리이기도 한, 이런 기본원칙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제도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구속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모든 사법개혁의 목소리는 공염불이 될 것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구속의 관행은 형사소송의 기본원리의 여러가지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도의 취지에 맞게 불구속 재판의 원칙을 명확히 하고 형은 엄중하게 선고하는 것이 맞다.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기 전에는 누구도 유죄로 취급되어선 안 된다. 그게 사법제도를 떠받치는 기본원칙이다. 그게 문명세계를 지탱하는 대원칙이다.




이런 식으로 법원이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키는 판결을 계속하는 것은 법원 자체의 기득권 유지에도 좋지 않다. 그들이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다면, 사회의 비슷한 권력을 기득권으로 가진 자들과 영합하는 게 아니라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판결을 해야 한다. 시민들이 판결의 권위를 부정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존재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기득권 집단이 법원의 기득권 세력에게 기대는 일도 없어지게 된다. 그들도 법원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권력으로 기득권을 수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는 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