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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23. 22:57

예전부터 이 주제로 꼭 글을 써보고 싶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개혁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법조인들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바보가 된다. 물론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무심코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법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행을 고치려고 노력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검찰과 마찰도 좀 있다.


구속이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체포에 비하여 장기간에 걸쳐 제한하는 강제처분을 의미한다. 구속은 영장주의에 의해 판사가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 뭐 누구나 구속이 뭔지는 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속을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다수의 사람 속에는 법의 전문가도 포함된다. 이들 중에는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고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에서는 그래서 영장을 청구하는 검사가 처벌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권한을 갖게 된다. 구속이 처벌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좋은 예가 간통죄이다. 요즘은 좀 다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통죄의 혐의를 받으면 무조건 구속이었다. 괴씸죄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알다시피 형사소송에 있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대원칙이 있다. 형사소송을 꿰뚫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죄추정이란 피고인이 유죄판결을 받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되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속이란 바로 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한 예외라고도 볼 수 있는데 형사소송의 진행과 형벌의 집행을 확보하기 위해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 이를테면 처벌의 목적으로 구속을 하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제275조의2)만이 아니라 헌법(제27조4항)에도 위반된다. 구속이 됐다고 해서 무죄추정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구속은 형사소송에 있어서 절차적인 제도일 뿐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당연히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당연히 나온다. 불구속 재판이 원칙임에도 구속이 되는 경우는 바로 구속사유가 있는 경우이다. 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에 의하면 범죄의 혐의가 있어야 하고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에 구속사유가 있다고 한다.


구속여부가 큰 쟁점이 됐던 강정구 사건을 보자.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강정구가 유죄나 무죄냐는 논점이 전혀 아니다. 또한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가의 문제와 국가보안법의 문제도 논외로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일단 그가 구속사유를 충족했는지를 본다. 일단 범죄의 혐의는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혐의가 있다. 도망의 염려가 있느냐를 보면, 이에 대한 판단은 범죄가 중범죄이냐에 좌우된다. 높은 형량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다면 당연히 도망의 염려가 생긴다. 강정구의 경우에는 중범죄이므로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구속은 불구속 원칙에 대한 예외이므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범죄행위(로 혐의를 두고 있는 행위)가 학술적인 논문이다. 또한 신분도 확실하고 주거도 확실하며 사회적으로도 지지가 존재하는 사람이다. 도망의 염려는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증거인멸의 염려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증거는 바로 공간된 학술 논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구속사유에 대한 판단은 가치판단의 영역이므로 반드시 나의 의견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도 그의 구속논란이 구속사유를 충족했나에 있다기 보다 그가 구속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유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은 피한다.


강정구의 구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자이기 때문에 구속해야 한다고 했다. 구속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를 국가보안법에 의율할 수 없다거나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며 구속하면 안된다고 했다. 두 주장 모두 다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둘 다 잘못된 생각이다. 이는 그가 유죄냐 무죄냐를 논할 때에 등장해야 하는 논거들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구속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서 나오는 논거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유죄판결의 개연성은 범죄 혐의가 있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이 요건은 구속의 제한요건이지 유죄판결의 개연성이 있으니 구속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결국 두 진영 모두 구속을 처벌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논거를 가지고 격론을 벌인 것이다.


구속이 처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에서 오는 경우는 드물다. 대다수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도 당연하게 그런 표현을 한다. 판사, 검사 등 법조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관행이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기까지 한다. 이런 관행을 고쳐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불구속 수사, 불구속 재판의 원칙을 세워서 무죄추정의 대원칙이 살아있는 원칙이 되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유이다. 그 외에도 검찰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다소 약화될 수 있다. 구속이 처벌이라는 의식을 가지면 검사는 처벌에 대해 권한을 일부 갖게 되는 것이고 이로 인해 검사는 불필요한 권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검사는 수사와 공판의 권한만 있으면 충분하다. 처벌은 절대적으로 법원의 권한이어야 한다. 또 법조계의 고질적인 비리인 전관예우도 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물론 이미 전관예우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의혹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전관예우가 일어나는 가장 큰 시장이 바로 구속시장이다. 일단 구속시켜 놓고 보는 관행에서 풀어줄 것인가 말 것인가가 가장 큰 이슈가 됐고 그걸 잘하는 변호사가 유능한 변호사인데 바로 전관들이 여기에 개입됐던 것이다. 불구속이 원칙이 되면 구속 사건이 줄어들어서 전관들이 들어올 틈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국민에게 있어서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것이 바로 구속의 제자리 찾기인 것이다.


다행히도 요즘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엄격하게 심사하여 기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의도야 어찌됐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오늘의 사례를 보자. 14명을 구속영장 청구를 했는데 법원에서 13명의 영장을 기각했다는 기사이다. 무척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구속된 노조위원장이다. 범죄의 중심인물이니 죄가 중하여 구속하고 나머지 노조원들은 기각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구속이 여전히 처벌이라는 논리에서 나온 결과이다. 당연히 노조위원장도 불구속됐어야 옳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이 환영할 만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잠시 인용해 보자면, "보수적인 법원마저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확인해준 거 아닌가요?"라는 노조 사무국장의 말이다. 이 말은 무죄판결을 받았을 때 나와야 하는 말이다. 법원이 우리를 처벌하지 않았으니 정당성을 확인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원칙에 의하면 유무죄의 판단이 아니라 구속사유가 없어서 기각된 것일 뿐이다. 투쟁의 정당성이 확인된 것은 너무나 당연히도 아닌 것이다. 물론 내가 문제삼는 것은 이러한 뿌리깊은 의식이지 대부분의 영장이 기각된 이 소식에 대해 반응하는 사무국장의 기쁜 마음이 아니다. 나도 이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고 딱 이 사무국장의 말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현재는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옳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언급이 당연히는 안 나오도록 의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법원이 이런 일을 한 것은 정말 환영할 만하고 기쁜 사건이다. 아주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본다. 보수적인 법원이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점차 변하고 있었지만 유독 노동문제에 있어서는 아주 강하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변화의 시작이 이번 사건으로 느껴진다. 법원이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 속에 권위있는 존재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어서, 그리고 많이 변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형사소송에 있어서의 대원칙이 된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이다. 법치주의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헌법상의 기본원리들이 충실히 구현되는 것이 바로 법치주의를 세우는 길이다. 이런 원칙들이 허무한 구호가 아니라 생활 속의 원칙으로 살아있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덧글

제대로 쓰고 싶은 글이었지만 역시 시간과 노력의 부족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 되었는데, 좋은 글을 생산하는 것보다는 일단 의견을 내놓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창피를 무릅쓰고 올린다. 역시 좋은 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역시 여러번 퇴고를 거친 글을 올린다는 것은 단지 꿈일 뿐이다.

걱정돼서 한 마디 더 하는데 위 구속사유의 판단은 제대로 된 판단도 아닐 뿐 아니라 전혀 글의 논점도 아니므로 여기에 대한 반론이 있어도 참아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