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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4. 14:40

블로거 쟁가에 의하면 "2002년 이후 우리의 일상"이라는, 촛불집회에 한 번이라도 나가본 386들(여기서 386은 좀 넓게 잡아 90년대 초반까지 군사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해본 세대를 말한다.)은 감동에 가까운 경험을 한다. 과거 그 치열하고 엄숙했던 광장이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북적대고 밝고 명랑한 웃음이 가득찬 곳으로 변모한 것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혁명을 포기하고 '운동판'을 떠났던 이들은 그들이 막연히 꿈꾸던 혁명이 이렇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내가 당장 그렇다. 이러한 '광장'에 나와보지 아니한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갇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일정한 구도를 설정하고 이 집회를 개념규정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촛불이 시작된 이후 한결같이 견지하는 입장이 바로 이것이다. 뿐만 아니라 촛불을 비판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촛불에서 감동을 느낀 사람들(나를 포함하여)이 가지는 이러한 희망을 무작정 착각이라고 매도하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다. 하지만 이게 이른바 '새로운 정치의 도래'를 의미하는가에 대하여는 그 현상의 진단은 수긍이 가는 바이지만 그 '조직화 강박관념'에 대하여는 감히 착각이라고 하고 싶다. 이러한 착각은 정부와 여당의 구시대적 개념규정과 크게 달리 보이지 않는다. 구시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도 이러한 현상을 구시대적으로 색안경을 쓰고 본다면,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한 세기 전의 유럽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피를 흘려 입헌주의를 쟁취한 국가들과는 달리 독일이나 일본은 이러한 시민혁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입헌주의를 만들어냈다. 그 부작용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나의 짧은 식견과 인식에서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독일만을 두고 보자면, 그 부작용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민주주의 과잉과 이러한 혼란(?)을 해결한 국가사회주의의 등장이었다. 물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와 "추정적 의사"가 아닌 "경험적 의사"를 정책에 반영시키려는 시도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지난 백여 년간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대의제의 근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 역사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독일의 경우도 그 한 부분이 된다. 많은 모순과 불합리를 노정하고 있는 대의제를 아직 지켜야 하는 이유는 아직 인류의 민주주의 수준이 이를 극복할 만한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에서는 대의제조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런 '거창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촛불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들을 그냥 비웃고 넘어가는 게 '불가능'한 이유는 이 역동적인 광장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촛불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음에도 여전히 촛불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앞으로의 한국정치는 지역단위, 생활단위로 잘게 쪼개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청와대 앞에서의 백만 명의 촛불이 아니라 구청 또는 시청 앞에서의 열 명, 백 명의 촛불이 혁명으로 가는 길이라고 보고 있다. 분명하게도 광장은 달라져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은 정부든 시민이든 뿌리깊게 갖고 있는 중앙집권적인 사고방식이다. 한국의 시민들에게는 광장은 서울의 광장이어야 하고 아젠다는 전국적인 아젠다여야 한다.

촛불집회에 대해 감동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과도한 냉소도 웃기는 일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30% 이상의 시민들이 존재하고 지금 총선을 한다해도 이 확고한 지지는 변함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또한 시민들은 여전히 또 다른 이명박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여간 지금 광장에 나가는 사람들(우석훈은 이를 중도의 40%라고 하는데...)을 조직화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일상"이 된 촛불은 앞으로도 여전히 조직화된 촛불로만 남을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의 촛불이 의미있는 것은 조직화되지 않은, 아니 조직화를 거부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일단 내일이 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내일 정말 백 만 이상이 모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 누군가의 말처럼 "새로운 정치의 도래"인지 아니면 "월드컵광장의 연장선"인지

노지아 2008.07.04 15: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
속류히피 2008.07.04 15:53 | PERMALINK | EDIT/DEL
^.^;;
N. 2008.07.05 00:3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중요한 것은 정치의 일상화가 아니라 일상의 정치화라고 봅니다.
이전에 그에 관한 글을 쓰다 말았는데... 전 지금의 촛불이 일상의 정치화보다는 정치의 일상화 쪽이라 생각해요. 언젠가 글을 완성할 수 있겠지요. 그때 트랙백 걸겠습니다. :)
속류히피 2008.07.05 02:16 신고 | PERMALINK | EDIT/DEL
제가 사실은 그 둘 사이에 어떤 명확한 차이가 있는지 잘 구별이 안 됩니다. 실은 제가 말하고자하는 바가 N. 님이 말씀하시는 일상의 정치화가 아닐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글을 얼른 완성하여 주세요. 완성되지 않은 글도 좋은데... 하여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너무 완성된 글만 보여주시면 저처럼 불완전한 글만 올리는 사람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제가 사실 촛불에 대해서는 그간의 논의들을 꼼꼼하게 살핀 것이 아니라서 지금 어떤 논의들이 있는지 따라잡기도 좀 벅찹니다. 그러니 어서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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