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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10. 16:03

중요한 것은 운동권에 속하는 세력을 누가 더 많이 끌어 모으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경쟁일랑은 민노당 혼자 하게 내버려 둬라. 더 중요한 것은 현대적 의미의 진보정당으로 제 색깔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다. 운동권 세력들 끌어 모으는 것은 당장 세를 확장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나, 그래봤자 장기적으로는 동네 리그로 돌아갈 뿐이다. 그 좁은 테두리 밖에 폭넓게 존재하는 진보의 염원을 조직하는 것. 핵심은 그것이다. (진중권 칼럼, 프레시안)

어제 선거 결과를 보고 절망했다. 이른바 진보진영의 스타 의원인 심상정, 노회찬의 낙선을 보면서 과연 이들이 4년 후에는 원내에 재진입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이들의 인지도나 대중친화도가 모자라서 낙선의 결과를 가져왔을까? 17대 국회의원 중에 이들보다 더 유명한 국회의원이 있었을까? 아마 그런 의원은 몇 없을 것이다. 강남 한복판도 아니고 도대체 왜 서민들은 노회찬 대신에 홍정욱을 의원으로 만든 것일까? 의원이라는 것은 유권자가 자신의 의견을 반영해달라고 자신들의 대표로 의회에 보낸 대의사다. 그들은 홍정욱이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권력을 위임했을까?

'제도권' 정당을 표방하면서 아직도 '운동권'의 내연을 가지고 있는 진보정당이라면 이번 선거에서 받은 지지 그 이상은 아마 힘들 것이다. 진보정당은 사회의 변화의 최첨단에 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존재의의가 무색해진다. 진보신당은 그런 역할을 할 능력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정당은 수권정당이어야 한다. 당장 집권을 하여도 내각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심상정이 대통령을 할 능력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그를 뒷받침할 참모, 정부의 장관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곤란하다. 유권자가 투박하고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이지만 그런 느낌은 정확하다. "진보신당? 데모나 하던 애들이 과연 우리를 먹여살릴 수가 있을까? 우물안 개구리 같은 노회찬이 외국과의 교섭에서 세련되게 처신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다. 홍정욱? 그가 대변하는 의사가 무엇이 되었든 유권자들은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신당이 한국의 대표적인 좌파정당으로 수권능력을 갖춘, 그리고 언젠가는 집권이 현실로 다가올, 그런 정당이 되려면 우선 몇 가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 있다. 이건 정말 기본적인 것이고 인상의 문제인데, 제발 공적인 정당의 (옥내 또는 옥외) 집회에서 비장한 얼굴로 줄맞춰 서서 주먹을 불끈 쥐고 '쟁가' 좀 부르지 말아야 한다. 나도 학교 다니던 시절 쟁가를 무지 사랑했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혼자서 '철의 노동자'를 흥얼거리기도 하지만 정당은 투쟁단도 아니고 운동권 OB들의 친목단체도 아니다. 이런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바라보는 유권자의 머리에는 '진보신당=운동권'이라는 인상만 남는다. 그들이 무슨 이슈로 무슨 정책에 대해 주장을 했는가는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더불어서 의원들이 거리로 나가 시위에 앞장서는 것도 비슷한 인상을 준다. 의원들이 할 일은 의회에서 토론, 대화, 타협으로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지 거리로 나가 (주장이 아무리 타당하고 정당하다 하더라도) 구호를 외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건 운동단체에 맡겨야 한다.

정치에는 돈이 든다. 진보신당이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2.9%밖에 얻지 못한 이유는 당연히도 돈이 없어서 그렇다. 미디어에 광고가 되었든 기사가 되었든 노출이 되어야 한다. 홍보는 돈이다. 그런데 진보신당에는 돈이 없다. 원내 진출도 실패했으니 얼마 안 되는 국고보조금에 기댈 수도 없다. 후원금이건 당비이건 좀 악착같이 모을 필요가 있다. 당원이나 후원인들이 자발적으로 내기를 기다리지 말고 당에서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당원의 가장 큰 의무는 당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부자당원'에게 당연히 특별당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좀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지역구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의원은 지역구 유권자의 표로 만들어지는데 전국적인 이슈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지역의 현안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있는데 '법적으로' 지역대표도 아닌 국회의원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이상론만 주장할 때가 아니다. 지역구가 존재하는 한 이런 지역구민의 요구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역구 유권자는 자신들의 의사를 중앙에서 더 관철시킬 확률이 높은 '힘 있는' 의원을 원하는 것이다. 그냥 뉴타운 반대, 한미FTA 반대, 대운하 반대 등의 공약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러한 '어이없는' 정책이라도 그걸 원하는 유권자도 분명히 존재하고 또 그러한 정책에서 얻어지는 이익도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환경재앙이라 반대! 농민들 다 죽이니 반대!" 등은 정말 씨알도 안 먹힌다. 이런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대체할 이익을 제시해야 한다. 이게 시민단체나 학계에서 대안없이 반대해도 되는 것과의 차이다. 정당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정책 연구소이다. 여기에도 돈이 든다. 기성정당들의 부패는 단순히 그들이 파렴치해서가 아니다. '깨끗한 돈'을 깨끗하게 모으는 것은 부패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는 것보다 수백만 배나 어렵다. 그래서 기성정당들이 돈을 모으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자발적인 기여만 기다리면 돈은 모이지 않는다. 누군가 흙탕물(부패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구걸'도 해야 한다는 의미)도 뒤집어써야 한다.

진중권의 말대로 좌파정당이 기반이 다 갖춰지기를 기다려 당원이 되고자 한다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좌파정당의 기반이 갖춰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당원이 되어 당비를 내고 이런 저런 훈장질을 해야 그런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다. 당 밖에서 훈장질 하지 말고 당원이 되어 그런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 제대로 된 좌파정당? 바로 지금 여러분의 당비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누구는 골프 치는 좌파는 없다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골프 치는 좌파, 벤츠 타는 좌파가 없으면, 좌파정당의 집권? 요원하다. '좌파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이런 염결주의부터 벗어버려야 한다. 혁명을 원하는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원하는가? 달나라에 가서나 하라. 달나라에 갈 돈이 없다면 골방에 모여서 열심히 혁명하시기 바란다. 개량주의? 개량하지 않는 좌파가 좌파인가? 제발 도그마에서 벗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