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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8. 20:14

요즘 이회창의 출마를 놓고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 대체적으로 이회창의 출마는 "과거로의 회귀"라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가 이회창의 지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명박을 지지하지도 않지만, 이회창의 출마를 환영까지는 아니어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농이 반이지만, 박근혜마저 이회창 편에 들어가 이회창이 당선되는 상황을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이유는 전여옥 때문이다. 이명박이 몰락하면 전여옥이 낙동강 오리 알 될 듯싶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말이 이해된다.) 그렇게 전여옥이 싫다. 내가 하고자 한 얘기는 이게 아니고.

이회창의 출마는 한국의 정치지형을 좀 더 이념적으로 세밀하게 분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대략 보면, 한국의 정당의 분포는 ('건전한' 우파라 주장하는) 극우, (중도이고 싶어하는) 우파, (좌파를 지향하지만 민족주의에 먹혀버린) 좌파 이렇게 크게 나눌 수 있다. 어디나 정상적인 정당은 아니다. 오히려 정당으로서 그나마 일관되고 특정 지지세력을 가진 정당은 한나라당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이념이 어떻든 정당정치를 확립하는 데 더 가깝게 다가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정당을 부정할 필요는 없고, 어느 시대에나,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극우세력을 대변하는 한자릿수 지지율 정당으로 존재가치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문제인 것은 이들이 50%를 넘는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는데, 지역적인 문제가 있고, 한나라당이 우파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받아들여지는 문제가 있다. 선거에서 전선戰線의 문제 때문에 언론들이 우파정당을 좌파로 몰고 빨갱이 거부감의 덕을 보려 한 이유도 있다. 이러한 극우 언론들의 책략은 어느 정도 효과적이어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인다. 노무현 정권은 좌파정권이라고. 여기에 대해서는 장하준이 한 말이 있다.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라고 하면 외국에서 웃어요." 사실 어떤 꼬리표를 다는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정책을 꼼꼼히 분석할 능력이 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잘못 붙여진 꼬리표에 따라 투표를 하게 된다. 그래서 이념적 지형을 세분화해서 제자리를 찾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소하게 취급할 문제로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한국인은 이런 이미지 꼬리표로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이회창이 대변하는 세력은 이념적으로 이명박이 대변하는 세력과는 다르다. 이명박은 시장주의자로서 자유주의에 가까운 우파로 보이지만 이회창은 예를 들자면, 미국의 네오콘처럼 국가안보와 통제를 우선시하는, 자유주의와는 좀 거리가 있는, 극우적 이념에 더욱 가깝게 보인다. 이런 세력이 하나의 정당에 존재하는 것이 반드시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원들, 즉 각 세력의 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한국의 정당 현실에서는 차라리 분당을 하여 각각의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민의를 대변한다는 대의제도에 좀 더 충실할 수 있다. 미국처럼, 예를 들면, 공화당에도 여러 세력들이 하나의 정당에서 동거하고 있는데, 미국의 정당정치는 '비교적' 당원들의 의중이 대변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이런 세력들의 동거가 그리 부적당하지만은 않다. 또 오랜 기간 정착된 양당제의 전통이 더욱 이런 동거를 확고하게 만든다. 한국에는 이런 전통이 없기 때문에 분화되는 것이 민의의 대변이라는 관점에서 더 대의제에 충실해 보인다. 이러한 한나라당의 문제는 이른바 범여권이라는 세력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동거가 가장 부적절한 것은 오히려 민주노동당이다. 전혀 이념적으로 섞일 수 없는 세력인 민족주의 극우세력(이들은 이념적으로 민족주의 좌파로 분류되나, 나는 이들을 극우파라 부른다.)과 좌파가 하나의 정당에서 동거한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여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정상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민주노동당이 어서 분당하여 제자리를 찾기를 원한다. '어떻게 만든 제도권 정당인데 스스로 분열하여 몰락을 자초하느냐'는 의견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좌파정당의 건설이라는 큰 목적은 결국 달성이 불가능하게 되는 사태가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것이다.

이러한 세력들의 분화가 민의를 대변하는 대의기관을 선출하는 선거에 부합하게 되려면 그 자체로는 좀 부족하고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완성(?)된다. 세력의 분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결선투표를 도입하지 않으면 지금과 다름없이 매번의 선거에서 단일화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또 세력간에 선거를 위한 합종연횡이 일어나고 기껏 이루어진 세력의 이념적 분화는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다. 각 세력간의 무한 경쟁으로 선거를 치르고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때에는 다수 득표자 둘이 결선을 치르는 이런 제도가 정착되면 다시는 선거를 위해 정체성이 다른 정당간의 합당이나 무리한 후보 단일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선에서는 자연스럽게 세력간의 연합이 일어나고, 그렇게 들어선 정부도 연립정부와 비슷하게 되어 한 세력의 독주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제도는 연구만으로 정착되는 것은 아니고 국민들이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각종의 제도들이 운용되면서 진화하여 좀 더 적합한 최적의 제도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후보 유고시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는 둥 한나라당의 요즘 입장들을 보면 이명박이 낙마할 가능성은 그저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개연성을 갖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이회창이 출마한 것도 그저 대통령병에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거나 지지율 20%를 믿고 도박하는 심정으로 나왔다고 볼 수는 없다. 여기에 박근혜가 가세하면 이회창 대통령의 탄생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가능한 일이 된다. 아직도 여론조사를 보면, 이명박 지지자의 대부분은 BBK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도 이명박을 지지한다고 하니(가능하다면 이들의 뇌 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 섣부른 판단은 아직 이르다. 하지만 기정사실로 됐던 이명박 대통령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오늘 조선일보 여론조사를 보니 둘 사이의 차이가 대략 13,4% 정도인데 이 정도라면 조중동이 조금만 도와주면 금방 역전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명박에 대한 극우 또는 우파 '지식인'들의 거부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이회창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한나라당의 다수가 이회창 밑으로 들어가 새로운 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순도 100% 극우정당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떨어져 나온 세력은 총선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이리저리 세포분열을 해 새로운 세력을 만들게 될 것이고 여기에는 현 '범여권'도 포함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물론 나의 느슨한 현실인식으로 인하여 이런 낙관론을 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상만 해도 즐겁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물론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회창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노무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건 '진정한' 좌파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이상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2002년에도 그랬듯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엉뚱한 곳에 투표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뜻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회창의 출마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한국의 정당정치를 발전시킬 계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현재의 비정상적인 정당구도에서 정책선거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정책과는 전혀 상관없이 '단일화' 구도로 선거가 진행되는데 무슨 정책선거가 가능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회창의 출마가 "과거로의 회귀"라거나 "정당정치의 실종"이라는 견해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는 가능해도 동의하기는 힘들다. 정책선거가 불가능한 것은 이념적, 정책적인 분화가 일어나지 않고 그냥 선거구도에 맞춘 '단일화 타령'에 기인한 것이지 이회창의 출마가 이를 부채질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분석하는 것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거나 한국의 정치지형을 단면적으로만 봐서 그렇다.

이렇게 분화가 일어나 다양한 이념을 가진 세력이 정치세력화 된다면 현재 한국의 가장 큰 사회적 병인 '쏠림' 현상도 어느 정도 치유가 가능하리라 본다. 좀 더 나아가 거창하게 얘기하면, 한국 사회의 파시즘을 완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정치 세력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사회에 파시즘은 도래하지 않는다. 물론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중구난방(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은 오히려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정국이 불안정했던 바이마르 시절에 가깝다.)이면 오히려 파시즘을 부르겠지만.





이 글을 올리고 여러 블로그들을 순방하고 있었는데, 헉, 우석훈의 블로그에 거의 동일한 논지의 글이 이미 열흘 전에 올라와 있었다. 내가 그 글을 읽은 기억이 없는데,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지 아니면 글을 읽고 잠재의식 속에 저장해놓고 그게 나도 모르게 이렇게 거의 표절의 수준으로 나타난 것 같다. 열흘이나 된 글이니 그 글을 읽었을 가능성은 거의 백프로이다. 하여간 의도한 바는 아니고 정말 그 글이 기억에 없어서 그러니 모두 양해를 바란다. 글을 지우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시간을 투자하여 작성한 글이라 이렇게 그대로 두면서 그 글을 링크한다. 정당들의 이념적 분화와 결선투표는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바인데, 아마도 프랑스의 정치를 염두에 둬서 이런 비슷한 생각이 생긴 것 같다. 정말 당황했다. 만약 그 글을 읽은 독자가 내 글도 읽었다면... 게다가 우석훈 님이 내 글을 읽었다면... 아찔하다.

덧2
지금 다시 가서 또 그 글을 읽었는데, 이건 완벽한 표절이다... 표절이란 게 이렇게 의도하지 않아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누가 뭐라 한다면 이건 전혀 변명이 안 되겠다. 내심 이회창 출마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분석에 대해 '이런 독창적인 분석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올린 글인데...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변두리 2007.11.10 02: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글이 학술지 또는 학위논문용이 아니고 본글에서 유사성에 대해서 언급하셨으니 표절일리 만무. 막연한 제 비합리적인 예감은 박+창의 5년이 곧 펼쳐질 듯. 그리고 5년동안 2~3번의 로스쿨 개혁이 또 있을 듯. 기존의 서열체제의 유지라는 방향과 그 반대방향의 밥그릇 싸움간의 반복. 결국 차차기 대선에 또 다시 쟁점화 할 듯. 원고적격의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고 본안은 언제 다뤄보나...하는 생각.
속류히피 2007.11.10 17:58 신고 | PERMALINK | EDIT/DEL
"원고적격의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고 본안은 언제 다뤄보나...하는 생각."
정말 탁월한 비유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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