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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8. 19. 17:22
유엔, 한국 ‘단일 민족국가’ 이미지 극복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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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달린 댓글



한국의 민족주의, 혈통주의, 인종주의에 대한 기사에 동감하면서 남긴 누군가의 댓글이다. '우리민족끼리'란 말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창피할 테니 쓰지말자는 거라면, 위와 같은 기사가 나는 이유는, 분명하게도, 댓글을 남긴 저 사람이 가진 가치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민족, 같은 국민이 한 행동으로 '우리 공동체' 밖의 사람들 시선을 걱정하고 창피해 하는 것은 전형적인 민족주의의 발현이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예전에 '나라 망신'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디 워 현상'의 파시즘적 색채에 대해 우려하는 글이었는데, <디 워>는 '국위선양'인데 왜 '나라 망신' 얘기가 나오는지 궁금해 할 수 있다. '국위선양'과 '나라 망신'은 정확하게 동어반복이고 그 가치관의 기저에는 동일한 논리가 작동한다. 조승희가 한국인이라 부끄러운 사람은 황우석이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떨친 사람이라 자랑스러워 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감정 자체가 비논리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규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보이지만 그 시도는 여러모로 가치가 있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현실로 존재하는 '민족의 모순'은 그럼 덮어놓자는 말이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내지 논리에는 일부 공감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나의 입장을 밝히라면, 우리가 '민족'이라는 언급을 하는 순간, '민족'이라는 기표가 존재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하고 싶다. '민족'이라는 개념을 상정하는 순간 우리를 하나의 민족으로 울타리치게 되고 공동체의 내부와 외부가 갈리는 것이다. (나는 원래 좀 오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를 하나의 민족으로 묶을 수 있다고 한다면, 애초에, 과연 '우리 민족'의 범위는 어딜까? 모르겠다. 원체 '민족'이라는 것이 혈통, 문화, 역사 등이 복합적으로 관계된 정의내리기 힘든 개념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감안하고서라도 도대체 범위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주로 혈통적인 문제가 기준이 되는 듯한데 여기서도 의문은 있다. 유전적인 동질성이 어느 정도까지 인정되어야 하는가? (나는 함경도 출신인 어머니 덕에 여진족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농담이 아니다.) 이리저리 궁리를 해봐도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된다. 단지 나의 무지만이 이유일까? 나는 그 이유를 '민족'이라는 개념의 허구성에서 찾는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니 개념이 모호해지고 범위를 확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과연 이른바 '민족의 모순'이 모두 '계급의 모순'으로 환원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파시즘의 도구로서) 민족주의는 내부를 향해서도 외부를 향해서도 분출된다. 내부를 향하는 민족주의는 기준에 미달하는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배제로 나타난다. 외부로 나타나는 민족주의는, 언급이 필요없게도, 역사가 그 사례를 무수히 보여줬고 또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아프간 인질 사태'에서 민족주의자라면 인질들이 우리 민족이므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한다는 의견은 민족주의의 외부적인 분출만을 고려한 것이다. 일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구성원은 '우리 민족'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또 '우리 국가'의 이익을 해하는 구성원은 '우리 국민'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그 인질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고 우리와 같은 공동체 구성원의 지위는 박탈되는 것이다. 바로, 내부로 향하는 민족주의를 간과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본다면, 왜 내가 위에 인용한 댓글의 '나라 망신'이 기사가 지적하는 민족주의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하고 이를 경계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이유는 민족주의가 그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족주의 자체로 이미 훌륭한 파시즘의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민족주의가 파시즘과 동의어라고 볼 수는 없다. 파시즘을 완성하는 도구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런 도구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폭발적인 파시즘의 에너지를 내는 것이다. 우리는 근래에 이런 징후들을 자주 봐왔다. 가장 가까이는 <디 워>를 둘러싼 논란에서 봤다. 애국주의, 민족주의도 문제지만 4천8백만의 인구 중에 1/4 정도가 보는 영화가 매해 등장하는 것도 문제다. 온 국민이 취향과 가치관이 획일화되어가는 중에 민족주의가 보태지니 파시즘의 토양은 아주 비옥하게 가꿔지고 있는 것이다. 파시즘의 도구들은 이렇게 서로 '세포분열'을 돕는다. 이 도구들을 별개의 문제로 치부하고 지나치게 가벼이 여긴다면 이 도구들이 위험스런 에너지로 변태되었을 때 속수무책이 될 것이다. (글을 쓰다보니 또 너무 나갔다. 하여간 이 오바는...^^)

다 알다시피, 이슬람 세계에는 '명예살인'이라는 것이 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죽으라는 거다. 이 '명예살인'의 폭력성이 현재까지도 우리를 짓누르는 '나라 망신 강박증'과 겹쳐서 보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내가 원래 개념들을 좀 뭉뚱그려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명백히 구분되는 개념인 민족주의, 애국주의, 파시즘 등등을 거의 하나의 개념처럼 사용했다. 잘못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주장은 오히려 쉽게 전달됐으리라 믿는다. 내가 이런 경향을 보이는 이유는,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개념들의 기저에 깔린 가치관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경계하는 바는 바로 그 가치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