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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8. 16. 19:31

어떤 전문가가 있다. 이 전문가는 자신의 전공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엉겨붙으면' 자신의 전공에 대해서는 까불지 말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비전문가는 전문가가 보는 정도로 판단하기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옳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데에도 대단히 용감하게 발을 담근다. 이리저리 폭넓게 독서하는 것은 알겠는데, 자신의 수준이 그 분야의 전문가보다 더 깊고 넓다고 '확신'한다. 불가사의하다. 그 지적인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분야의 전문가가 보면 그 수준이 훤히 보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사람이 그러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로 치부하기도 힘들고 참 난처하다. 


어떤 속물이 있다. 이 속물은 다른 속물들을 속물이라고 비난하는 게 낙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비난이 잦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속물이다. 이 속물이 언제나 하는 말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네가 이룬 성과정도는 당장 이룰 수 있다.'나 '과거에 이미 난 너보다 훨씬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난 속물이 아니라서 이 모든 세속적인 성공을 거부했다.' 등이다. 실제로 이런 선택을 한 사람은 속물여부를 떠나서 존중되어야 한다. 어쨌건 그런 선택은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속물이 아닌 것은 아니다. 가치관 자체가 천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어이없는 사람이라도 무시하기는 힘들다. 그게 딜레마다. 그가 천착하는 전공분야에서의 사회에 대한 기여는 대단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학문적인 깊이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의 전문분야에서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논문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주로 그의 잡문을 보고 그를 판단한다. 따라서 내 판단에 대한 확신은 좀 떨어진다. 어떻든, 이런 종류의 인간이 학문적인 성과를 내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 자신이 그 분야의 전문가보다 더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역사상, 여러 분야에서 하나같이 훌륭한 성과를 낸 사람은 드물지만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내가 언급하는 그 사람은 자신이 이런 정도의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비웃음 한 번 날려준다. 피식...) 하여간 이 사람도 자신이 학자로서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실 학자라기 보다는 실무형 전문가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사회에는 대단히 필요한 존재이지만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하고 있는 여러가지의 좋은 일에 참여는 하고 싶은데 내가 이 속물의 천박함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의 진보를 위해 내 정신건강의 일부분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 


이율배반적이게도, 오늘도 나는 그의 글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생각할 만한 점을 던져준다. 그의 글은 형편없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훌륭하다. 글이 워낙 형편없어서 읽는 데 인내가 필요하지만 그가 의도한 내용을 알아냈을 때는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점이 새로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 그의 존재가치가 있다. 내가 내 분야에서 그런 존재이냐하면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그를 무시할 수 없다. 


덧글

주인공이 이 글을 읽을 리는 없지만 조심하게 된다. 사이버에서 나의 정체성을 현실 세계에서의 정체성과 구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에 거침없이 쓰고 싶어서이지만 아직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글을 실명으로 쓸 수 있는 때가 오면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다. 만약 그가 읽는다면 자신의 얘기인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