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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8. 9. 05:37
어제 아침 일찍, 아마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였을 것으로 짐작하는데, 제법 굵은 비가 지붕을 때리고 있었다. 나는 이런 빗소리를 너무 좋아해서 가끔 우울할 때면 이런 굵은 비가 내려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우리집은 이층집이고 2층에는 발코니 혹은 베란다 혹은 페티오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제법 넓게 있는데 이곳의 용도는 주로 빨래 건조실이다. 마치 식물원처럼 유리로 둘러싸인(천정도) 공간이다. 하늘이 보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주로 흡연실로 이용했다. 지금은 담배를 끊어 흡연실로 이용하지는 않지만 담배를 피우며 보는 하늘이 너무 좋아서 담배없는 흡연실을 가끔 이용한다. 이곳에서 들리는 빗소리(천정 유리을 때리는)는 정말 일품이다. 이런 빗소리는 예전에 송광사에서 묵언수행을 했었을 때(대학시절 군대를 가기위해 휴학했을 때 도시를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하고자 송광사에서 하는 수행에 참여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수행 프로그램이 후에는 돈벌이가 되기도 하고 불교의 대중화에도 도움이 되어서 한동안 유행처럼 전국의 이름난 절에서는 다 이런 수행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금도 하고 있다.) 절간에 앉아 계곡에 흐르는 물 위를 때리는 빗소리를 들을 때만큼이나 좋은 소리이다.

하지만, 아침에 거길 나간 것은 빗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붙어있는 서고를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가끔 큰 비가 오면 서고의 천정에서 비가 새기 때문에 혹시하는 마음에서 가본 것이다. 서고는 내 서고는 아니고 아버지의 서고인데 아버지께서 정년퇴직을 하시면서 가져오신 연구실의 책들 중에 도서관에 기증하고 남은 책들을 위한 서고이다. 아버지가 계시면 직접 점검을 하셨겠지만 요즘은 아버지 어머니께서 진부 오대산 밑에 가서 생활하시기 때문에 내가 한 것이다. 아버지의 신신당부가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테지만... 다행히도 서고는 무사했다. 그러고 나서 그냥 들어오기에는 빗소리가 너무 좋아 잠시 비오는 풍경을 듣고 있었는데 한 집을 사이에 둔 옆집에 누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집도 우리집과 마찬가지로 2층에 발코니가 있는데 그 집에는 천정이 없고 하늘이 뚫려있는 곳이다. 아마 그 사람이 입은 옷이 아니라면 무신경하게 지나쳤을 것인데, 그녀(여자였다!!)는 아주 새빨간 원피스에 맨발로 그냥 비를 맞으면서 발코니를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있었다.

헉. 나는 본능적으로 숨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내가 왜 숨었을까? 이게 무슨 묘한 관음증의 시선이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숨어서'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억수로 퍼붓는 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정말 온몸으로 느낀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이라는 걸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묘령의 여인이 빨간 원피스를 입고 하얀 맨발로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는 광경이 관능적으로 느껴졌지만, 보고 있는 동안에, 비에 씻겼는지는 몰라도, 더이상 그런 느낌은 없어졌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Henri Cartier Bresson)의 사진을 모짜르트를 들으며(나는 비오는 모짜르트를 좋아한다.) 감상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비를 맞으면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정지한 사진처럼 보였다. 브레송의 사진은 '결정적인 순간'으로 정지해 있지만 피사체가 사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데, 나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정지해 있는 사진을 본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와이 슌지의 <하나와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빗 속에서 까만 '츄리닝'을 입고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전혀 성질이 달랐다. 빨강과 까망의 차이였을까? 원피스와 '츄리닝'의 차이였을까? 비를 향해 온몸을 드러냄과 모자까지 뒤집어쓴 숨김의 차이였을까?

그녀는 무엇 때문에 그 굵은 빗줄기에 온몸을 맡겨야 했을까? 결혼 생활(미혼일지도 모르지만)에 권태를 느끼고 있었을까? 아니면 실존적인 고민에 빠져있었을까?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너무 더워서 시원한 비를 맞고 싶었을까? 우리 발코니에 천정이 없었다면 나도 그 순간 비를 흠뻑 맞고 싶었다. 그냥 이런 일탈적인(우산 또는 비옷없이 빗 속에 나간다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는 일탈로 취급된다.) 행동을 얼마나 하고 살게 될지를 생각하면 서글퍼졌다. 아웅다웅 시끄러운 세상에 그녀의 발코니는 섬이었다. <디워>도 아프간 사건도 개신교도 남북정상회담도 비가 쏟아지는 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쏟아지는 비와 그녀 그리고 하얀 맨발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섬에서 같이 비를 맞고 싶은, 시끄러운 세상에서 허우적대는 (관음증 환자가 아닐까 고민하는) 4개월차 비흡연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빗 속의 빨간 원피스의 여인... 참 절묘한 조합인데 그녀는 그걸 의도하고 빨간 원피스를 입었을까? 그냥 자다가 잠옷차림으로 그냥 나왔던 걸까? 하여간, 그녀는 그 비가 쏟아지는 아침을 만끽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만끽하고 있었다.

덧글
일찍 잠에서 깬 새벽에, 라면을 끓일까 씨리얼을 먹을까 고민하던 중에...

덧글2 (30분 후)
씨리얼 먹고 식욕이 동해서 라면에 밥까지 말아 먹었다. 이런 미련한 짓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지... 동네 한 바퀴 산책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운동을 위해서지 절대로 그 집을 기웃거릴 의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