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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21. 19:11
언론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자주 쓰는 말인 "단군이래 최대"라는 수식이 꼭 맞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렇게 되기에는 아직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만약 사건의 실체가 반이라도 드러난다면 그야말로 단군이래 최대의 부패 고리가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 뿌리깊은 부패의 고리는 단단하다. 이미 보수 언론에서는 물타기를 시작했고 그 고리의 정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청와대도 뭔가 석연찮다. 정치인들도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고, 뭔가 앞에 나서서 주장하는 일부 정치집단도 그저 대선정국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만 드러내고 있다. 특별검사가 수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겠으나 그 내용이 뭔가 허술하다.

특별검사의 등장은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이어야 한다. 물론 검찰 자체가 사건의 당사자이다 보니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검찰이라는 기관이 통째로 부패한 것도 아니고, 전체 검사들로 보면 한 줌도 안 되는 부패검사들에 의해 대다수 사명감으로 일하는 검사들이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아마도 검찰은 이번 사건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다. 만약에 부패한 검사들에 놀아나 사건이 축소 은폐되거나 유야무야 된다면 아마도 검찰이라는 기관의 존재가 부정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검찰도 분명히 알고 있다. 단순히 제 식구 감싸기나 꼬리 자르기로 사건을 처리했다가는 "민란"수준의 저항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또 나는 묵묵히 '정의'를 구현하는 대다수 검사들의 자존심을 믿는다.

하지만 검사들의 선의에만 맡기기에는 사안이 너무 엄중하다. 이는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허물어질 수도 있는 커다란 사건이다. 그렇기에 일체의 의혹이 해소가 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려면 특별검사가 마무리짓는 수밖에 없다. 검찰의 수사를 토대로 특별검사가 미진한 부분을 밝혀야 한다. 그게 전략적으로도 옳은 판단이다. 대선에 목을 메고 있는 정치권이 내놓은 특검법안을 보면, 기간이 너무 짧다. 이 기간조차도 유례없이 긴 기간이라는 지적들이 나오지만, 사건의 엄중함을 생각하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밝혀야 한다. 검찰 내부의 문제는 조직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우석훈의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전략적으로, 지금 특검이 수사를 바로 시작하고 제대로 수사가 가능하겠냐는 지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냥 단세포적인 흥분으로, 검찰이 당사자라 검사들 못 믿겠으니 특검을 하자는 것은 이 거대한 부패 고리를 끊을 절호의 기회를 그냥 날리자는 것과 다름 없다. 물론 삼성이 증거를 없애고 대책을 강구할 시간을 벌어줄 염려가 존재하지만, 이 사건은 빠르지만 깊숙하게 파고 들어야 한다.

내부고발자(공익제보자라 부르자는 주장이 있지만 그렇게 부른다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부고발자의 '고자질'이 배신이 아니라는 인식을 어려서부터 교육으로 체득해야 한다.)인 김용철에 대해 이래저래 말이 많다. 100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받아먹다가 배신을 했다는 둥, 불법영업 노래방과 관계가 있다는 둥 고발자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서 증언의 진실성을 탄핵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당연히 당사자로서는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김용철이라는 사람의 도덕성이 아니다. 그가 밝힌 범죄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가 파렴치한이라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자신도 누차에 걸쳐 말하지만 그도 공범이다.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물론 내부고발자에 대해서는 양형에 있어서나 유무죄판단에 있어서 참작이 가능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법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 자신도 포함된 조직의 범죄사실을 고발하는 것에 혜택이 없어서 그저 당사자의 양심에만 의존한다면 앞으로 이런 내부고발은 다시는 없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지난 경험이 있다. 내부고발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무너지고 다시는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하지 못한 사례를 많이 봐왔다. 이제는 이를 공론화해서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여간 김용철의 사생활이나 그의 고발의도 같은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삼성과 결탁한 언론, 정치권, 관료들의 이런 본질 흐리기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신문들은 벌써 경제위기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기사다. 정몽구, 김승연 사건에서 각종 언론들이 부르짖은 것들과 거의 똑같다. 국민에게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 규모만이 아니더라도 상징적인 면에서도 다른 재벌과는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그래서 이런 수법은 더 잘 먹힌다. 양파처럼 까도 까도 의혹이 나오는 이명박을 죽어도 지지하겠다는(이 묻지마 지지의 기저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작용한다. 박정희는 국민의 가슴 속에 독재자일지언정 경제만은 발전시킨 위대한 지도자라고 각인되어 있다. 이런 심리가 이명박에게 투사된 것이다. 이명박에게서 박정희를 발견한 것은 옳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박정희가 살아와도 그런 발전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이명박이?) 경제만 발전시킨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상태에서 삼성이 무너진다는 소리에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국민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재벌을 해체하면 기업도 없어진다고 믿는다. 삼성 재벌이 해체되어도 삼성전자는 그대로이다. 단지 얼토당토않은 지분으로 엄청난 기업군을 지배하는 그 황제만 사라지는 것이다. 그 가족들이 가진 지분에 맞는 비율만큼의 지배력만 가지면 되는 것이다. 아, 물론 총수의 가신들인 CEO들을 대체할 인물들이 나타날 때까지 혼란이 있을 수는 있다. 그 혼란은 아주 잠깐이다. 주식회사인 기업은 개인 소유가 아니다. 이런 인식은 아마도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것 같은데,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따져봐야겠지만,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들의 출자로 유지되는 것이다. 국민들은 삼성은 이건희 것이고 당연히 이재용이 물려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당연히 이건희가 가진 재산은 그 자식들이 물려받는다. 상속세를 내고. 이걸 누가 막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재산만큼만 물려받으라는 것이다. 이런 재벌들은 재산을 물려받기도 전에 이미 자식들이 부모만큼의 재산을 갖는다. 단순히 말하자면, 생전에 이미 재산이 두 배로 뻥튀기 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정말 착하다. 이런 걸 보면서도 그러려니 한다. 아니 존경까지 한다. 사실 존경할 만하다. 그 파렴치함은. 이렇게 말을 한다면 또 언론은 이렇게 얘기한다. 반기업정서가 팽배해서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고 그래서 일자리가 줄고 그래서 살기 어렵다고 말이다. 이제는 이런 고장난 축음기 턴테이블에서 튀는 레코드판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소리가 지겹다. 그럼에도 언론이 계속 이런 소리를 해대는 것은 그 소리가 먹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어이없는 소리를 반복하는 것도 다 그 소리들이 먹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게 국민들의 의식에 달린 것이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금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권력과 부패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 권력이 어떤 도덕적으로 우월한 집단에게 가더라도 부패한다. 그렇게 도덕적으로 우월한 체하는 노무현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거기에 실망할 것도 없다. 누구든지 부패하기 때문에 감시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한 국가는 바로 이 감시가 유지되어야 굴러가는 체제이다. 만약 이번에 이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민주국가를 유지할 수 없는 사태가 된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도덕적으로'는' 너무도 깨끗하고 옳은 권영길이 집권을 한다면 부패가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그런 기대는 안 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권력을 위임할 대표를 선출하는 데 도덕적으로 우월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감시체제를 적절하게 운용할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될지 삼성공화국의 시민이 될지는 전적으로 각자의 손에 달렸다. 이제는 우리도 투표행위의 무거움을 인식할 때가 되었다. 무심코 던진 한 표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다. 나는 삼성공화국의 시민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유달리 질투가 심해서 이건희가 잘 사는 데 배알이 꼬여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런가?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