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2. 22:58
[그냥저냥]
마이클 무어의 [Sicko]를 봤다. 마이클 무어의 정치적 입장이야 다 아는 바이고, 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다 감안하더라도 미국의 의료 서비스 문제, 특히 의료보험의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리라 본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15% 이상의 국민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입지 못해 죽어간다는 간단한 메세지는 한미 FTA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의료 서비스를 소비자들이 경험할 수 있다는 정부를 비롯한 FTA 찬성론자들의 논지를 가볍게 박살낸다. 한국은,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가 말하는, 의료보험이 공공서비스로서 국가의 영역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연히 인정되는 나라이고 이런 체계가 확고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문외한으로서의 '감상'이다.) 미국의 문제는 근미래에 우리에게 닥쳐올 재난이다. 정부를 위시하여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성장주의자들의 궁극의 제도는 미국의 제도이다. 모든 것은 경쟁과 효율의 논리가 우선시되는 시장에 의해 통제되기를 바라는 이러한 주장의 지향이 어디인지 보여준다.
이건 좀 영화의 부차적인 문제이지만, 성장주의자들이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우리는 아직도 선진 사회복지를 실현하기에는 성장이 미흡하다.'는 주장의 허구성도 명백히 드러난다. 마이클 무어가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치료받고 돌아가는 환자에게 차비까지 보조해주는 믿기 어려운 의료보험 시스템'이라고 보는 듯한 영국의 의료보험 체계는 2차대전으로 초토화된 1948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국이 1948년의 영국보다 사회복지 체계를 갖추는 데 필요한 성장이 미흡한가. 성장주의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표를 주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한국이 서구의 잘 사는 나라들만큼 발전을 하면 자연 사회복지도 그 수준으로 발전하리라고 착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사회복지 시스템을 일찍부터(가난한 시절부터) 만들어낸 토대에서 지금의 그런 발전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맞지 않을까? 또 미국의 딜레마처럼, 그러한 성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자본의 몰염치함과 비인간적임은 모두가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에서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제국諸國이 모든 부문에서 미국보다 낫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시스템조차도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가지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곳을 고르라면 고민의 여지가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마 앞으로 유럽도 미국적인 시스템이 더욱 확산될 것이고 그걸 막아내기에는 미국 자본의 힘이 너무 막강하여 힘에 겨울 것이다. 하물며 한국이 그걸 막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물결에 맞서 최소한만이라도 지켜낼 수 있는 방안을 모두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 한다. 그저 막연히 좋아지겠지 하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암울한 미래이다.
영화 자체는 간단한 메세지에 비해 좀 지루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대다수가 갖고 있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깨기에는 충분하다. 영화에서 특히 재밌었던 장면은 의료보험을 국가 영역에서 공적으로 담당하는 것에 대해 과거 미국인들이 그건 사회주의라면서 전체주의 공산국가들의 집단적인 모습을 오버랩하면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게 70년대의 일인 것 같은데, 한국의 현재의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논리와 이미지가 일치했다. 아직도 이 낡은 가치관에 사로잡혀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안티-빨갱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풍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는 게 날 괴롭혔다. 더불어서, 날마다 입만 열면 성장을 부르짖는 '모든' 대통령 후보들의 모습에서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들이 근미래에 직면하게 될 이 두려운 현실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이렇게 그저 관망만 하고 있어도 좋을까라는 고민이 깊어진다.
이건 좀 영화의 부차적인 문제이지만, 성장주의자들이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우리는 아직도 선진 사회복지를 실현하기에는 성장이 미흡하다.'는 주장의 허구성도 명백히 드러난다. 마이클 무어가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치료받고 돌아가는 환자에게 차비까지 보조해주는 믿기 어려운 의료보험 시스템'이라고 보는 듯한 영국의 의료보험 체계는 2차대전으로 초토화된 1948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국이 1948년의 영국보다 사회복지 체계를 갖추는 데 필요한 성장이 미흡한가. 성장주의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표를 주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한국이 서구의 잘 사는 나라들만큼 발전을 하면 자연 사회복지도 그 수준으로 발전하리라고 착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사회복지 시스템을 일찍부터(가난한 시절부터) 만들어낸 토대에서 지금의 그런 발전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맞지 않을까? 또 미국의 딜레마처럼, 그러한 성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자본의 몰염치함과 비인간적임은 모두가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에서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제국諸國이 모든 부문에서 미국보다 낫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시스템조차도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가지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곳을 고르라면 고민의 여지가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마 앞으로 유럽도 미국적인 시스템이 더욱 확산될 것이고 그걸 막아내기에는 미국 자본의 힘이 너무 막강하여 힘에 겨울 것이다. 하물며 한국이 그걸 막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물결에 맞서 최소한만이라도 지켜낼 수 있는 방안을 모두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 한다. 그저 막연히 좋아지겠지 하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암울한 미래이다.
영화 자체는 간단한 메세지에 비해 좀 지루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대다수가 갖고 있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깨기에는 충분하다. 영화에서 특히 재밌었던 장면은 의료보험을 국가 영역에서 공적으로 담당하는 것에 대해 과거 미국인들이 그건 사회주의라면서 전체주의 공산국가들의 집단적인 모습을 오버랩하면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게 70년대의 일인 것 같은데, 한국의 현재의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논리와 이미지가 일치했다. 아직도 이 낡은 가치관에 사로잡혀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안티-빨갱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풍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는 게 날 괴롭혔다. 더불어서, 날마다 입만 열면 성장을 부르짖는 '모든' 대통령 후보들의 모습에서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들이 근미래에 직면하게 될 이 두려운 현실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이렇게 그저 관망만 하고 있어도 좋을까라는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