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2008. 8. 9. 15:04

요즘 KBS 문제로 시끄럽다. 정연주가 마치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는 '지사'처럼 둔갑하고, 물론 시민들이 그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언론장악에 대해 '공영방송'을 지키는 것이겠지만 시민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낙하산 인사의 대표가 정연주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이러한 딜레마에 대해서는 김규항의 글이 나의 생각을 정확하게 대변한다. 그래서 달리 덧붙일 말이 없다.

이 문제는 언뜻 보기에는 정권의 "쿠데타적"인 폭거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근원적인 문제 중의 하나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시스템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정연주의 해임건의를 의결한 이사회, 더 먼저는 이를 권고한 감사원(알다시피 감사원은 감사위원들로 구성된 합의제 기관이다.)까지 다수결에 의해 기관의 의사를 절차를 거쳐 표명한 것이다. 물론 그 절차가 적법한가는 달리 검토가 필요한 문제이다. 이는 주로 그러한 결정을 할 권한이 해당 기관에 존재하는가의 문제인데 이는 해석의 문제이므로 정답은 없다. 따라서 위법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적법하다고 봐도 반드시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이 지경에 올 때까지 적절한 이사의 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10년의 세월간 뭐하고 있었길래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킬 이사의 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지 이명박 정부의 '망동'에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인사가 이사회나 감사원을 채우고 있기를 바라겠지만 현실에서 그건 100% 불가능하다. 결국 민주주의는 표대결인데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정족수를 확보하는 싸움이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독립성이 요구되는 기관들을 합의제 기관으로 만드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대다수 합의제 기관에서 공통된 문제이다.

오늘 어떤 글을 읽었는데 전체적인 글의 논지에는 동의하지만 단지 필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는 위에서 말한 민주주의의 시스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면밀한 검토없이 가볍게 한 말일 수도 있다. 후자일 확률이 높다.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capcold님의 블로그님에서 인용)

!@#… 토막 둘. 대통령이 KBS 사장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임명권 vs 임면권 논쟁. 법적이기보다 정치적인 그 당 의원들과 청와대 실무자들의 컨셉은, 임기보장을 통한 독립성이고 자시고 다 필요없고, 뽑은 이에게 짜를 권리도 법적으로 자동 보장되어 있다, 라는 무척 단순명쾌한 논리. 즉 무능하고(명분) 마음에 안들면(의향) 잘라도 된다는 무척 실용적인 자세 되겠다. 만약 이런 초법적(이라고 쓰고 야매적이라고 읽는다) 발상을 사법부에서 손들어준다면, 사회 전반이 일관된 논리에 의해서 운영되어야 하기에 결코 이번 사안 하나에 한정될 제한적 파장이 아니다. (5초 침묵) …어라?

대한민국 헌법 제67조 ① 대통령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대통령은 선출되는 것이고 공사의 사장은 임명되는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풍자는 아니다. "다른 것을 같게" 놓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풍자라는 것은 변함없다.(이런 재기 넘치는 글은 언제나 즐겁다.) 또한 임기가 보장된 직위를 박탈하는 것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것은 내가 이 블로그에서 누차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선출과 임명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래서 국회에서 선출되거나 대법원장이 지명한 헌법재판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견해가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처럼 헌법재판관도 대통령이 임명하게 하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임명의 권한에는 면직의 권한이 따르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헌법재판관의 경우에는 당연히 신분보장에 대한 별도의 명문의 규정이 있다.) 따라서 법규정에서 명확하게 규정을 하여야 한다. 문제는 KBS 사장의 직이 판사의 신분이 보장되듯 보장되어야 할 직인가 하는 점이다. 또 임기에 대한 규정으로 임명권자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나는 그렇다에 찬성한다. 하지만 현행법의 해석을 두고는 반드시 그런지 의문이 있다. 따라서 임기가 보장된 정연주를 이명박이 몰아낸다 하여도 그게 "쿠데타적" 폭거인지는 단정하기 힘들다. 내가 동의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터무니 없다고 깔아뭉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문제라 일도양단적인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법규정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물론 한국이 성숙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민주국가라면 사정이 다르다. 하지만 이런 나라 몇 없다.

그런데 왜 법을 개정하면서 이렇게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서 입법취지를 들먹이게 되었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것이 바로 민주주의 제세력간의 타협의 소산이다. 물론 정작 이 법조항이 그런 타협 때문에 불명확하게 개정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모든 법 규정은 타협의 산물이다. 여기서 국회에서도 표대결에 이길 수 있는 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선거에 적극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해에 맞는 법을 만들어줄 국회의원을 당선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수많은 쟁점에서 이 후보자가 나의 의견을 대변할 것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확신은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념이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념과 선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양대지주이다. 백날 국민주권을 부르짖으며 거리에서 수중전을 하여도 정작 선거에는 참여하지 않아서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면 과연 그들이 바라는 국민주권은 무엇인지 되묻고 싶어진다. 아무리 백만 명이 거리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해도 선거에서 엉뚱한 사람이 당선된다면 정부에서는 당연히 역시 거리에 나오는 사람은 소수이고 자신들을 지지하는 사람이 다수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자신들의 이념대로 각종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