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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4. 19:49
아직 확실한 발표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로 볼 때 검찰에서 이명박 대세론을 박살낼 결과를 발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단한 검찰이다. 늘 그래 왔듯 미리 정보를 흘려 여론을 떠보는 짓도 잊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극적인 반전이 있을 거라는 기대치는 매우 낮아 보인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와는 관계없이 정당의 이념적 분화와 고착화를 기대하는 나는 이명박의 낙마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지금 자연스런 이념적 분화를 가로막는 것은 이명박이라는 인물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인데, 이 가능성이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하게 구축되어 여간해서는 깨지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니 이명박과 결별하고 싶은 보수 세력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기대했던 바대로 이명박이 낙마하고 이회창이 뜨는 상황이 연출된다면 복지부동하고 있던 극우파들이 이회창 쪽으로 붙을 것이고, 그간 한국 정당정치를 왜곡해온 지역주의도 상식적인 수준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나의 막연한 공상과도 같은 추정이었는데, 오늘 민주당의 극우세력인 이윤수, 안동선 등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이회창 지지 선언을 하는 것을 보니 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이윤수나 안동선 등은 그야말로 호남세력의 핵심부에 있던 사람들인데 (물론 이들이 그 호남권력의 힘을 좌지우지했다는 의미보다는 호남세력의 가치를 대변하는 세력이었다는 의미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확히 대척점에 있던 이회창을 지지한다고 선언을 했으니 그 의미가 그저 단신으로 취급되기에는 너무 크다. 그것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니 권력을 좇은 철새들의 대이동으로 보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그건 심대평과 이회창의 단일화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이야 원래 한가족이니 큰 의미가 있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을 따라 배신한 정진석의 경우를 보면 심대평의, 이미 예견한 대로지만, 이회창으로의 합류는 선거공학적으로 단순히 판단하기에는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다. 오히려 배신을 한 정진석의 선택이 자연스러운 이동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지러운 ‘합종연횡’은 이념적인 분화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조순형도 이회창에 호감을 표시했다. 이런 분화는 보수세력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고 이른바 개혁진영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강금실이 정동영을 지지하고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오늘은 문국현이 정동영과 단일화를 제안했다. 자유주의자들도, 물론 어이없는 ‘단일화’타령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이념적인 자리찾기가 시작될 기반은 마련되었다. 아마도 총선정국이 되어야 본격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확실해지는 것은 이명박의 낙마가 실현됐을 때이다. 좌파는? 민주노동당의 좌파들은 아직 갈라설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뭐라 할 문제가 아니다.

시사인을 보니 이미 검찰의 수뇌부는 정치적인 판단을 마친 것 같다. 깐깐한 이회창보다는 구린 구석이 많은 이명박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히든카드를 들고 이명박 정권내내 써먹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일 거다. 뭐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무식’해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건 뭐 당연한 것이지만, 검사들 너무 무식하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살아남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조직이 되려면 이런 정치적인 판단은 독약이다. 하긴 상층부의 정치검사들은 향후 5년 자신의 입지가 중요하지 그 이후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식견이 없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닭짓이란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실제로 나는 검사들이 아무리 무식해도 설마?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 시궁창에 머리를 들이미는 짓을 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센 조직이란 생각에서였다. 이게 개개인의 검사들로만 생각을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조직으로서의 검찰은 사명감으로 일하는 단독관청으로서의 검사와는 별개로 봐야 하는 것 같다.

시사인의 기사가 없었더라면, 검찰도 많은 고민 끝에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선해했을 것이다. 사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인데 압도적으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를 기소한다는 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내란이나 외환의 죄, 또는 살인의 현행범이 아닌 다음에야 비밀스러운 증거만이 존재하는 부패로 엮기에는 그 정치적인 부담이 너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정상명이 한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시사인이 단독보도한 김경준의 메모가 명백한 사실인지에는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체적 진실이 법원에서 갈리는 것이 아니라 검찰에서 거의 최종 판단을 하는 것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는 지금의 한국 정세는 수상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검찰에서 이명박을 기소하고 이명박이 낙선하고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인가. 이래저래 판단하기 힘들다.

검찰의 가장 현명한 판단은, 수사한 사실 있는 그대로 밝히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되면 그게 옳든 그르든 논란은 끊이질 않을 것이다. 어쩌면 선거 자체의 유효성이 문제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새로 취임한 검찰총장이 임기를 무사히 채우는 것은 다음 정부에서 신임을 얻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고민이 이해는 가능하지만 고민 끝에 나온 악수가 그저 닭짓이라고 웃고 넘기기에는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도 지대하여, 아직도 발표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현명한 판단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여 끄적일 뿐이다. 실체적 진실은 항상 저 너머에 있다. 아무도 모른다.



잘 안 하는 짓이지만, 이런 좋은 글은 널리 읽혀야 한다는 의미에서 링크 하나 겁니다. 꼭 읽어 보시길...
이상한 대선, 이택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