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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18. 23:20
나는 김치를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을 정도다. 왜 뜬금없이 김치를 좋아한다는 소리를 하냐면, 오늘 김치를 담그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든 생각이 있어서이다. 나의 아버지도 김치를 매우 좋아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머니가 담그신 김치 외에는 안 드신다. 그래서 환갑도 오래전에 지나신 어머니는 아직도 김치를 담그신다. 김치를 담가보았거나 그 과정을 유심히 관찰한 사람이라면 다 알 테지만, 김치를 담그는 것은 매우 힘든 노동이다. 게다가 그냥 수시로 담그는 김치가 아니라 김장이라면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김치가 어떻게 '민족'의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을까.

대표음식 김치의 이면에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고통이 존재한다. 예전부터 이 힘든 노동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항상 이 맛있는 김치를 담가주는 여성들이 있어서 김치는 '민족'의 대표음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지극히 맞는 말이겠지만,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수사도 큰 몫을 차지한다. 할머니, 어머니, 며느리를 거쳐 내려오는 손맛이라는 수사의 이면에는 김치는 여성들이 담가야 한다는 당위에 가까운 강제가 존재한다. '손맛'을 가질 수 없는 남성들은 그저 땅이나 파고 김치독을 묻을 뿐이다. 그렇게 이 땅의 여성들은 김치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들여 왔다. 김치를 콕 집어서 얘기를 해서 그렇지 우리의 전통음식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김치를 담그는 수준으로 심한 노동을 필요로 한다. 된장이 그렇고 고추장이 그렇고. 이런 전통음식을 배우는 것은 시집을 간 여성들이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필수 과목이다. 시어머니의 손맛을 계승하지 못하는 며느리는 실격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그것은 대를 못 잇는 며느리가 실격이듯, 여성들을 짓누르는, 남성들의 '침묵의 카르텔' 같은 착취구조를 의미한다. 착취에도 등급이 있다면 이러한 착취는 최상급에 속한다.

다른 지역의 대표음식들도 이런 어려운 노동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얕은 지식으로 용감하게 추측건대, 이런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 대표음식이 되는 것은 거의 여성들의 노동을 손쉽게 착취할 수 있는 '관습'을 가진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먹는 특별한 음식은 될 수 있을지언정 누구나, 언제나 먹는 대표음식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 힘든 음식을, '당연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없다면, 매일같이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전통음식으로 남아있을 수는 있겠지만, 매일 먹어야 하는 대표음식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자연스레 도태되었을 것이다. 물론 김치 등이 매일 담가야 하는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한 끼의 밥상에도 한 가지가 아니라 배추김치, 물김치, 총각김치 등 여러 가지의 김치가 올라야 하는 우리의 밥상을 보면, 김치를 담그고 관리하는 것은 일상이었을 것 같다. 거기에 된장도 간장도 고추장도 담가야 하니 말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시는 날은 즐거운 날로 반겼다. 왜냐하면, 김치 중에서 최고로 치는, 잘 절여진 노란 배춧잎 뚝 떼어서 새로 버무린 김칫속을 싸서 먹는 진미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 진미를 즐기지만, 김치의 깊은 맛 속에 담긴 이 땅의 여성들의 고난을 생각하면, 앞으로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제 바야흐로 김장의 계절이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지만(이게 김치 냉장고의 등장 때문인가?) 그래도 그 엄청난 양의 김장을 해야하는 할머니, 어머니, 아내의 고통을 마음 속으로만 공유하지 말고 '내가 먹을 김치는 내가 담근다'는 '결의'로 모두 배추 앞으로!!!
연애편지 2007.11.18 23: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시나요?
속류히피 2007.11.19 00:02 신고 | PERMALINK | EDIT/DEL
어이쿠, 오랜만에 오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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