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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27. 20:22

오늘 이명박이 네티즌과의 만남을 가졌다는 뉴스를 봤다. 아마 네티즌들은 이명박을 그다지 열렬히 지지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이런 '네티즌과의 만남'이라는 형식은 그야말로 네티즌이나 인터넷의 성격을 잘못 판단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네티즌을 만나려면 넷상에서 만나야 한다. 네티즌은 인터넷을 벗어나는 순간 네티즌이 아니라 그냥 씨티즌이 된다. 블로거를 만나려면 블로거들을 모아서 밥을 사는 것보다는 직접 블로고스피어를 누벼야 한다. 그래야 진짜 블로거를 만날 수 있다. 네티즌을 만나려면 역시 인터넷상에서 그들과 맞닥뜨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네티즌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시민들을 시장이나 거리에서 만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게 된다. 네티즌은 넷을 벗어나면 더이상 네티즌의 특성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네티즌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맨날 말로만 웹2.0을 떠들고 IT를 떠들었다는 방증이다. 이건 이명박만의 문제는 아니다. 네티즌, 좁게는 블로거들이 매우 우호적인 것으로 보이는(내 인상이다) 문국현도 마찬가지이다. 문국현도 블로거들과의 만남을 가진다는 광고를 얼마전에 봤는데, 관심깊게 보지를 않아서 언제인지 이미 열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것도 좀 어이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든지 그들을 초청하여 만날 수 있지만 그건 '블로거들과의 만남'이 아니라 그냥 유권자들과의 만남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시장 상인들을 만나려면 시장에 직접 갈 수도 있고 상인들을 초청하여 모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들은 상인으로 초청되는 한 어딜 가나 상인이다. 그들의 상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어딜 가나 발현된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는 다르다. 블로거 내지 네티즌은 그 정체성을 넷상에서만 드러낸다. 그게 인터넷에서 표출되는 사회의식과 현실세계에서 표출되는 사회의식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이다. 이는 익명성 때문이다. 익명성은 말 그대로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여기에는 쉽게 잊혀진다는 망각성과 엄청난 다수와의 만남이 쉽게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다수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인터넷상에서는 여론이 매우 쉽고 빠르게 형성된다. 더불어서 이런 이유로 여론이 조작되기도 매우 쉽다. 정치권은 지난 대선에서 이런 특질을 파악했기 때문에 '네티즌과의 만남'류의 모임을 주선하는 것인데, 그 특질이 뭐라는 것만 알았지 특질이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한 인식은 없어서 이런 모임들을 '오프라인'에서 개최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지적하자면, 그들이 초청하는 블로거 또는 네티즌이 이른바 명망가들이라는 점이다. 인터넷과 웹2.0의 특징은 관계가 수평적이어서 소통도 수평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따라서 명망가들이 다수의 네티즌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어떤 분야에서는 그들이 전문적이라도 또 어떤 분야에서는 내가 전문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만들어진 학벌이나 직업, 지위 등으로 만들어진 권위가 희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권위에 의존하여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라 수평적인 소통을 통해 수평적으로 권위가 인정되기도 하고 부정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만큼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그래서 누구나 어떤 전문가와도 대등하게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다. 이게 인터넷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이다.


이런 중요한 점들을 간과하는 정치인은, 현실세계에서는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라도, 적어도 네티즌의 지지를 얻어내기는 힘들다. 네티즌은 넷을 벗어나는 순간 씨티즌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렇게 내가 주장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그런 모임을 가짐으로써 일정한 광고효과를 얻는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들도 기를 쓰고 이런 모임을 성사시킨다. 이런 네티즌의 특성을 그 보좌관들이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뉴스에서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네티즌이라고 칭하는 것이 매우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인상을 남기고자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