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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3. 09:18

그들이 돌아왔다. 둘은 시신으로 돌아왔고 나머지 스물하나는 외견상 멀쩡하게 돌아왔다. 아마 외견상으로는 멀쩡해도 심각한 내상을 입고 돌아왔으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을 둘러싸고 이미 예상했던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돌아왔으니 그동안 참았던 화풀이가 시작된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국민'들의 뜨거운 비난이 이해는 가능하나, 방향이 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안 그래도 뜨거운 블로고스피어에 나까지 부채질할 필요는 없으니 가볍게 세 가지만 짚는다. 


1. 정부에서 석방된 피랍자들에게 석방시키는 데 든 비용을 구상한다고 한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는 데 든 비용을 구상한다? 코메디다. 하지만 피랍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로 넘어갈 수 있다. 교회에서도 구상에 최대한 응하겠다고 하니, 비정상적이긴 하지만,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니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생략할 수 있다. 구상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조금이라도 누그러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만약 교회에서 딴소리가 나온다든지 하면 아마 모르긴 해도 '국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다른 방도는 찾기가 힘들 것이다. 교회가 최소한의 머리라도 있다면 구상액을 다툰다든지 구상 자체의 정당성을 다툰다든지 하는, 딴에는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비행깃삯 같은 것은 논란이 없겠지만, 이른바 '몸값'은 문제다. 정부에서 대놓고 '몸값'을 주었다고 할 리도 없고 얼마라고 할 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구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 대다수 '정부의 구상권 행사'를 찬성하는 국민들이 비행깃삯이나 받아내자는 것은 아닐 테고,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복장이 안 터진다.


2. 석방되어 돌아온 사람들에게 쇼핑이 어쩌고 색안경이 어쩌고 등 어이없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40일이 넘게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비난이 가당키나 한가? 사실일 리도 없지만, 설사 사실이라 해도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비난은 이들을 향해서는 안 되고 교회와 개신교 단체로 향해야 한다. 어이없는 개신교계를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그걸 '평생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야 할 불쌍한 사람들' 비난하면서 날리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벌써 세계선교협의회나 교단의 여러 선교단체들이 다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돌아온 사람들 개인에게 퍼붓는 비난의 에너지를 교회와 개신교 단체의 개혁을 위한 에너지로 돌려야 한다. 이런 글들이 필요할 때다. 종교문제는 이런 우연적인 돌발사태가 아니면 핵심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는 이런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토론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민주주의의 의결과정에 익숙하지가 않다. 이번 기회는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큰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두 번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다. 이런 기회를 마녀사냥식의 비난으로 소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3. 아프간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그 가족들도 제발 상처입은 심신이나 치료하면서 조용히 세간의 이목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들을 언론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언론에 대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괜히 '국민'들 심기도 불편한데 건드리지 말고 조용히... 먼저 간 두 동료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조용히... 분명히 이들 중에는 블로그니 미니홈피니 하는 데에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 또 이곳저곳으로 '펌질'을 당하고 왜곡되고 하면서 분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이 현명한 것인지 숙고하기 바란다. 자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