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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30. 20:24

우리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 중의 하나가 선진국일수록 성 평등이 많이 이뤄진 나라일 것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나라일수록 민주주의가 더 잘 구현됐을 확률이 놓고 민주주의가 잘 구현된 나라일수록 성 평등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선입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현실을 보면 이런 명제가 참일 확률은 매우 높다. 유엔이 최근 발표한 새천년 개발목표를 중간평가하는 보고서(링크를 건 웹페이지의 중간 쯤에 보고서가 있다.)를 보면 목표의 제 3항에 성 평등을 달성하고 여성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항목이 있다. 여길 보면 선진국이 발전적일 가능성이 놓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 평등 지수로 대표성을 가진다고도 볼 수 있는, 의회에서 여성의원의 비율에 특이한 점이 있는데 르완다의 여성의원 비율은 49%에 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본 명제는 대체로 참이지만 반드시 참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반드시 옳아야 참이지 대체로 맞다고 참은 아니다.)


내가 이런 거창한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성 평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요즘 보는 일본의 『지옥 판가름도 며느리 나름』이라는 드라마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고부간의 갈등을 주제로 한 코믹드라마인데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며느리(기업의 경영자이다.)와 평범한 회사원인 남편, 그리고 전통적인 일본식 가치관을 갖고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는 시어머니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서의 논점은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 아내의 전통적 역할을 중시하는 이 시어머니의 남편은 조용조용하고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남성이다. 이런 캐릭터 장치로 인해 드라마가 강요하는 가치관은 치우쳐 있지만 드라마 자체는 묘하게 균형을 잡아간다. 이래서 이 드라마가 재미있다. 내용을 떠나서 등장인물들의 풍부한 성격의 표현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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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주된 갈등은 시어머니의 전통적 가치관과 며느리의 현대적(?) 가치관의 충돌이다. 대결구도로 사건을 이끌어 가지만 시어머니의 사려깊음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시어머니의 가치관이 우월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이 비합리적인 가치관이 일본이 지켜나가야 할 전통 내지는 미풍양속으로 둔갑한다. 낡은 가치관이지만 그것이 일본인들이 지켜나가야 할 일본인의 마음(고꼬로)이라는 것이다.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남편을 主人(슈진)이라고 부른다. 누구나 그렇다. 과거에 부르던 대로 그대로 부르는 것인데 현대에서는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관행적으로 그렇게 부른다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정확히 그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시어머니를 지배하고 있는 전통적인 일본식 가치관은 그대로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으로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다. 이게 동아시아의 유교적 전통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정작 그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바른 분석이라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동북아시아의 문화 전파의 흐름을 보면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흘러갔다고 보는 게 통설인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중국에서 발생한 유교적 전통이 한반도에서 이상하게 변종으로 재탄생해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질 않았고 전문가도 아니니 잘 모르겠다. 논점이 아니니 넘어가자. 요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관은 한일 공통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가치관을 얘기한다고 해서 일본만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일본드라마 오타쿠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드라마를 많이 본 사람인데 그런 입장에서 보면 일본드라마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사회인이라면' '어른이라면' '남자라면'이라는 가치관의 세뇌에 가까운 계몽과 도덕적 윤리적인 잣대의 강요가 그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가 이 틀에서 안 벗어난다. 하지만, 그중에 이런 드라마가 아니라 『수박』류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적인 드라마와 『하얀거탑』류의 전문 드라마가 있는데 이런 드라마의 존재가 앞서 말한 짜증나는 가치관의 강요에도 불구하고 일본드라마를 찾게 되는 이유이다. 『지옥 판가름도 며느리 나름』은 후자라기 보다는 전자에 가까운 드라마인데 그래도 재미있는 이유는 앞서 말한 상반구조적인 캐릭터의 설정과 과장되기는 했지만 현대 일본인들의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주인공이 내가 좋아하는 배우여서 재밌다는 게 맞다.


누군가가 여성 혁명은 가장 급진적(radical)인 혁명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여성 혁명이 이루어지려면 정말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앞서도 언급한 일본드라마 속의 '남자라면'에 대응하는, '사나이라면'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마쵸들만 쓰는 말이 아니고 여성들도 자주 쓰는 말이다. 미국에도 영화에서 보면 남자들이 이런 뉘앙스의 말을 많이 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말들이 자주 쓰이지 않게 되고 아무 생각없이 쓰이지 않게 될 때 성 평등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이런 말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결에 많이 사용한다. 앞서 말한 일본의 슈진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서두에서 선진국과 성 평등의 상관관계를 언급한 것은 이런 종류의 말들이 선진국에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그렇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나라일수록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많고 당연히 그런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사용하는 이런 말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고착화시키는 일종의 계몽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바일까? 이런 이유로 기득권이 많이 존재하는 윤택한 사회에서는 외형적인 성 평등이 구현될 확률은 높지만 뿌리깊게 박혀 있는 이런 의식까지의 변화는 오히려 르완다보다 어렵지 않을까란 어리석을지도 모르는 망상이 든다. 말 그대로 망상이길 바란다. 멀쩡한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이른바 사회 엘리트라는 후배가 한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담배피우는 여자가 싫어요" 내가 말하길, "왜?" "그냥 싫어요. 싫은 데 뭐 이유있나요." 이 후배는 담배피우는 남자는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향상 담배 안 피우는 남자를 싫어할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말과 의식이 무섭다.


덧글

글 제목이 거창한 것은 나름대로 일본드라마에 대한 풍자다.^^ 말 그대로 용두사미의 글이 됐는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자체 검열을 많이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지옥 판가름도 며느리 나름』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분석은 일부러 참는다. 능력이 없기도 하거니와 아직 드라마가 진행중이라서도 그렇고 별로 분석이 필요한 드라마라고 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일본드라마가 강요하는 가치관에 대해서는 나중에 그 주제만으로 글을 써볼 요량이다.

새천년 개발목표(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라는 것은 2000년에 각국의 정상들이 유엔에 모여 2015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약속한 8개항의 목표를 말한다. 이에 대한 중간평가 보고서를 지난 7월 2일 제네바에서 발표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할 이슈들이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이 중 대부분은 여자어린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