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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22. 17:29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관심을 안 가지려고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들 아시다시피 나는 이명박의 지지자가 아니고 또한 집단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집단적인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주의에 반대한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아니어도, 심지어는 조선일보마저, 이래저래 비판을 하고 있으니 거기에 한마디를 보탤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오랜(?) 침묵을 깨고 이렇게 한마디를 하려고 하는 것은 오늘 어느 블로그의 댓글이 나를 자극해서이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는, 블로그에 국한된 것인지는 몰라도, 노무현과 정모라는 살인마 그리고 김연아인 것 같다. 노무현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하고 싶지만 그건 그야말로 사람들의 개인적인 문제이고 어떻게 보면 발전적인 일로 생각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다른 두 가지에 비해 미미하기 때문에 언급이 필요한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살인마에 대해서는 법무부의 사형 시행에 대한 언급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의 의견에 대해 우려하는 바가 크고 이는 국가 권력의 구조적인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간단히 언급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김연아와 관련하여서는 간단하게라도 할 말이 있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고 나 또한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그들의 열광을 이해 못할바는 아니다. 하지만 ‘부상투혼’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고 싶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포츠에 있어서는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가미되어 있다. 그걸 우려하는 마음은 크지만, 승부의 경쟁이 있는 스포츠에 이런 것이 제외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스포츠에는 세 가지의 코드가 있다. 국가적 위상(한민족의 우수성이 포함된다.), 정신력 그리고 부상투혼이 그것인데, 이는 전형적인 국가주의, 민족주의 스포츠의 개념징표이다. 세 가지로 나누었지만 사실 이들은 한몸이다. 앞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내가 이 블로그에서 줄기차게, 지겹게 떠들고 있는 주제와 다름 아니라 중언부언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부상투혼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다. 김연아의 부상투혼. 김연아가 국가를 위해, 한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떨치기 위해 부상투혼을 발휘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김연아의 부상투혼을 비웃는다거나 그게 의미없다거나 열일곱의 어린 소녀가 힘들게 짊어지고 있는 국가적인 부담을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비록 생각은 다르지만 그런 게 아무런 의미없다고 비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김연아는 유별나게 승부욕이 강해서 자신의 몸을 상해가며 그 대회에서 꼭 이기고 싶었을까? 아마 모르긴해도 그럴 확률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높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린 소녀가 진통제를 맞아가며 ‘결전’에 나선 것이 단순히 그녀가 승부욕이 강해서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은 몰염치하다. 자신들의 죄를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의 스케이팅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달랐다. 그녀에게 가해진 국가적, 민족적 폭력을 그저 멀뚱멀뚱 보고만 있어야 한 내가 한탄스러웠기 때문이다.

다들 가미가제 특공대를 알 것이다. 그들은 왜 그 어린 나이에 국가를 위해 자살을 한 것일까? 또 이슬람의 어린 전사들은 왜 폭탄을 끌어안고 적진으로 돌진을 하는 것일까? 왜 김연아는 아픈 몸에 진통제를 맞고 ‘결전’에 나서야 하는 것일까? 이 세 가지의 ‘투혼’은 다른 것일까? 좀 사안은 다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공유하고 있는, 왜 이승엽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방망이를 휘둘러야 하는 걸까? 왜 우리는 해외여행을 하면서도, 아니면 다른 나라 사람과 ‘비지니스’를 하면서도 국가적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하는 걸까?

앞서 말한 그 댓글은(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댓글은 영어로 되어 있다.) 김연아가 지겹다는 필자에게 “너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냐? 부끄러워 하라”고 훈계를 하고 있다. 왜 김연아가 지겨운 필자가 (국가에 대해) 부끄러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모르긴 해도 그 밑으로 그 비슷한 의미를 가진 비난이 계속 달릴 것이다. 나는 김연아를 좋아하기 때문에(예쁘다.) “지겹다”는 표현을 쓰지는 않겠지만 그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견의 대부분은 내가 말하고 싶은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비난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 자체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고는 싶지만 그게 ‘틀린’ 생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들이 ‘틀린’ 생각이 되려면 내 생각이 옳아야 할 것인데, 그걸 누가 판단하겠는가. 그냥 그들은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의 표현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면 거기에는 맞서 싸워야 한다.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왜 “부끄러워야” 하며 블로그에 몰려들 다수가 두려워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하는가. 물론 나는 그 정도로 용기도 없고 맞서는 것도 귀찮아서 대부분 참는다. 이게 부끄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