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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11. 01:56

오늘 RSS로 날라온 김규항의 글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한마디 더한다. 나도 <88만 원 세대>를 보면서 남재희를 추천자로 삼은 저자들의 의도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었다. 사실 그 문제에 대해 글을 썼다가 지우기도 했다. 좋은 책에 자꾸 꼬투리를 잡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기왕 김규항이 한마디를 했으니 나도 '부담없이' 덧붙인다.  


남재희는 내가 군사정권에 복무했던 자들 중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자다. 지식인이 지식인임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좌우의 대표적 지식인을 한 명씩 뽑아서 추천을 받는 것이 책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책에서도 누누이 강조하듯이, 좌파의 이론만으로 풀어낸 책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생각이었을 '듯'하다. 우파 중에서 제대로 이론을 갖추고 교양을 갖춘 지식인이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군사정권에 '자발적'으로 복무한 사람을 고른 것은 저자들이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다. 


총으로 민중을 학살한 독재자의 바람막이가 된, 그 시절 지식인은 남재희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재희는 특히 더 악질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괜찮은 언론인이었고 김규항의 말처럼 매력적인 지식인이었다. 그가 실제로 군사정권의 이데올로그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로 그는 그렇게 보였다. 민중을 총칼로 짓밟은 전두환은 그 선연한 핏빛을 감추기 위해 많은 지식인들을 방패로 내세웠다. 어느 곳 어느 시대에도 군사독재자는 그렇게 자신들을 은폐하고자 한다. 군사정권이 무너진 다음 그 지식인들은 아무 소리없이 그냥 사라졌다. 뭐 한국이야 아직도 그 독재자가 멀쩡히 함께 숨쉬고 있고 국가 원로로 대접받으면서 세배도 받고 그의 호를 딴 기념공원도 만들겠다는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는 곳이어서 그에 복무한 지식인이야 작은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전 세계 어디에도 그런 지식인을 "사람으로 여기며" 살지는 않는다. 하물며 좌파인 저자들의 책에 이름을 올린다? 뭔가 불편하다.


과거의 잘못으로, 영원히 매장하고 '상식의 세계'로 돌아올 기회를 아예 박탈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부여되는 것은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진정성을 보일 때뿐이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아니면 시야에서 사라진 인물에 대해 무관심해서인지는 몰라도 남재희가 그랬다는 것을 들은적이 없다. 요즘 듣기에는 그가 '리버럴'을 자칭타칭한다는데, 국민에게 총질하는 독재자에게 복무하는 리버럴은 본 적이 없다. 혹시라도 그가 진정성있는 반성과 사과를 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이라면 알려주기 바란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용기있는 지식인으로 존경할 용의가 내게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