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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10. 18:22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이명박이 교육문제에 대한 공약을 발표했다. 사실 자세히 보면 알맹이는 없고 '선언적'인 의미밖에 없는 부실'공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를 환영하고 나선 것은 이로 인해 촉발될 교육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이곳저곳에서 이명박의 공약에 대해 비판을 하고 나섰다. 좋은 징조로 보인다. 교육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제대로, 상식적인, 행복한 미래를 꿈꿔도 되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 문제는 대운하를 따지고 드는 것보다 200만 배는 더 중요하다. 물론 대운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순진한' 생각에는 이 공약이 지켜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본다. 내가 대운하 공약에서 얻은 것은, 이명박은 그 동안 사람들이 예측했던 바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그런 가치관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 뿐이다. 나는 한국의 수준이 절대로 대운하를 허용할 만큼 '미개'하지는 않다고 믿는다. 이 믿음마저 없다면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앞으로도 내내 고역일 것이다. 


교육문제는 현대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라고 모두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인 대통령을 뽑는 데 있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냥 막연히 기업 경영자였으니 경제를 잘 꾸리겠지라며 전혀 검증될 수 없는 이미지만을 갖고 투표를 하려고 한다. 당장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나를 결정하는 중요한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고려가 전혀 없다. 그냥 막연히 잘 살게 해주겠지 기대만 한다. 이명박이 과연 이 기대를 이뤄줄 대통령감이냐는 나의 관심 밖이다. 이명박의 공약의 타당성에 대한 논박도 이 글의 관심 밖이다. 다른 이들에게 미룬다. 정치인의 수준은 정확하게 유권자의 수준이라는 말이 지금 대선을 앞둔 유권자들이 가져야 할 가장 절박한 명제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정책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각자의 몫이다. 그 판단을 돕는 것이 언론의 몫이고 각 정책전문가들의 몫이다. 민주사회일수록 정책이 하나로 귀일되는 예는 드물다. 대부분은 표대결로 가려진다. 그걸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책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있은 후에 유권자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선거의 모습인데, 한국의 선거는 그냥 이미지 선거다. 정책을 내놓는다고 그게 실현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듯하다. 물론 이번 선거 한 번으로 이런 관성이 타파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을 지지하는 국민의 50%를 제외하고는 지지할 후보가 없어 기권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기권하느냐는 별 문제로 기권하겠다는 그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기권하겠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대통령으로 뽑고 지지할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이른바 '명망가' 선거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인물'은 결정을 위임받을 자를 뽑는 선거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 인물의 정치이념이 바로 그가 앞으로 결정할 수많은 정책의 지향이 될 것이고, 이는 그 인물을 평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대다수의 기권하겠다는 유권자는 이런 이념의 지향이 자신과 맞지 않아서 기권하겠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가 가는 정치인이 없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는 정치가는 앞으로 몇 번의 선거를 더 해도 만나기 힘들다. 그런 정치가는 지난 역사를 봐도 그리 자주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박정희 같은 정치가가 앞으로 또 나오겠는가. 쿠데타로 집권할 지도자가 앞으로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가 다시 없을 위대한 정치가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박정희 시절 그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가졌던 그 신뢰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신뢰는 많은 국민들 사이에서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그 신뢰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별론이다. 그 카리스마가 총칼에서 나오든 돈에서 나오든 상관없이, 국민들이 그냥 하라는 대로 따르고 싶은 정치가는 앞으로 나오기가 힘들다. 한국은 아직 전직 대통령이 몇 없지만, 미국이나 영국을 봐도 그런 정치가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정치가를 기다릴 것은 아니다. 


나도 사실 이번 선거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 지지하는 정당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권하지 않고 투표를 할 수 있을까? 그게 선거일까지도 아마 큰 고민일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내가 기대하는 토론이 여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벌어진다면 아마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어떤 당의 어떤 후보이든 말이다. 물론 이명박은 아닐 것이다. 그의 대운하공약이나 교육공약은 전혀 내가 바라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줄 것 같지 않아서다. 그럼 민주노동당의 권영길은? 이건 좀 고민이다. 나의 잘못된 아집인지도 모르겠으나, 민주노동당이 이른바 자주파의 정당이된 이상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는 것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어떻게 만들어진 정당인데 그걸 그냥 포기한단 말인가. 이게 딜레마다. 그래서 어서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내가 통일을 바라는 것은 오직 한 이유이다. 민족주의 세력과 구별된 진정한 좌파정당의 당원이 되고 싶어서이다. 통일이 되면 이 민족주의 극우세력(나는 이들이 극우파라고 단정한다.)이 더 이상 좌파 언저리에 기생하는 일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렇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권영길이 자주파의 표을 등에 업고 후보로 선출됐을 때 나는 절망했다. 후보가 된 이후에 권영길의 행보를 보니 우려가 딱 들어맞았다. 이미지 정치놀음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심상정이 후보가 되었다면, 제대로된 토론을 촉발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영길은 정동영, 손학규의 이미지 정치와 별로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언론의 역할은, 특히 종이신문의 역할은 선거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다. 어떤 정치가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언론이 하는 것이다. 이것도 언론이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런 이미지 놀음이나 하고 있는 것보다는, 후보들의 정책에 대한 심도깊은 기획기사를 써서 신뢰할 만한 '정론지'가 되는 것이 장사에도 더 도움이 되고 정치세력에 대한 영향력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세계의 유력 '정론지'들이, 그들의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서, 정치인 이미지 놀음이나 해서 지금의 영향력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선정적인 이슈나 터뜨리고 얄팍한 이미지 기사나 늘어놓는다고 신문이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 이슈들은 다른 매체들이 있다. 이 발달한 인터넷 세상에 "신문보는 사람이 공부도 더 잘한다."류의 기사를 쓴다고 신문이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빠름과 가벼움, 쉬움이 담당하지 못하는 영역을 유지해야 한다. 이게 전통적으로 종이신문이 가진 영역이다. 내가 뽑는 정치인이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는 유권자들의 자각이 있으면 유권자들은 찾아서 정책을 공부할 것이다. 투기를 위해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책을 열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방송에서 후보자간의 토론을 진행하듯 신문에서는 지상紙上토론을 실어야 한다. 각 후보의 정책 책임자는 그 정책이 왜 필요한지와 상대편의 정책과 어떻게 다른지 등을 기고를 통해서 밝혀야 한다. 방송에서는 방송의 성격상 하지 못한 얘기들을 신문에서 해야 한다. 이런 게 각 후보가 누구랑 친하고 어느 학교 출신의 패거리를 거느리고 있고 위장전입을 몇 번을 했느냐 등보다는 '더' 중요하다. 또한, 정책을 검증할 능력이 있는 지식인들은 자신이 가진 지면을 인상비평이나 하고 감정적인 싸움을 연장하기 위해 중언부언하는 데에 낭비하지 말고 정책을 더 파고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귀중한 지면을 지식인들에게 할애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 역할을 방기하려면 "대중을 가르치려는 짓"도 그만둬야 한다. 유권자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정책(사실 이런 정책을 발표한 후보는 아직 없는 것 같다.)을 꼼꼼히 가르쳐야 한다. 


어떤 이는 한국 현실은 "정책선거도 인물선거"라고 한다. 정책도 인물에 좌우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얘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현실은 맞다. 한국의 정치 현실은 인물이 정책도 좌우한다. 하지만 정책이 중요한 쟁점이 되는 선거가 되면 더 이상 인물이 정책을 좌우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정책을 공약으로 걸고 선거를 치뤄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다음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된다면 더 이상 인물에 의지하는 정책은 나오지 못한다.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정부만 시스템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도 시스템으로 운용되게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앞으로의 선거에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만나는 일은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뚜렷한 지도자가 없이 정당들이 표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한국이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된다거나 군사독재가 다시 시작된다거나 하는 사건이 없다면 깃발만 들면 국민들이 믿고 따르는 그런 지도자는 나타나기 힘들다. 앞으로 계속 리더십의 부재를 떠들게 될 것이다. 정당도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의원보다 (정책전문가인) 보좌관들이 더 우수하다는 인식이 생긴다면 우리가 원하는 상식이 통하는 행복한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믿는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정당 중에 이런 모습에 가장 가까이 간 정당은 한나라당인 것 같다. 앞으로 십 년이 더 흐른다면 아마도 한나라당은 (정상적이라면 국민의 극소수만 지지하는) 극우파정당의 모습을 탈피해서 우파정당으로 발전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반대편에선 지금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선과 총선을 그 동안의 타성에 젖어 그냥 흘려보낸다면 말이다. 한 경제학자에 의하면 앞으로 3, 4년 안에 한국사회에 격동이 있을 것이라는데, 그 때에 혹시 지각변동이 있을까?